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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04. 2021

가족애가 아닙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밀린 방학 숙제를 하던 중에 아빠가 수영복을 챙기라고 했다. 뜬금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욕이 날아왔다. 엄마가 용돈을 주며 시킨 것 같았다. 하던 숙제를 멈추고 수영복을 챙겼다.    

  

 아빠는 한적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더니 말없이 성인용 풀장으로 가버렸다. 나는 혼자 어린이용 풀장에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아는 얼굴을 만날까 두려웠다. 뚱뚱한 몸이 부끄러웠다.   

   

 날아오는 비치 볼과 격하게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피하다 보니 어느새 그늘진 구석이었다. 가만히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어른의 손을 잡고 수영을 연습하고 있었다. 나도 벽을 잡고 물장구를 몇 번 해보다 그만뒀다. 괜히 슬퍼졌다. 아빠 손을 잡고 수영을 배우는 상상해봤다. 무서웠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를 누를 것 같았다. 화기애애한 부자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한 번은 배워보고 싶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아빠에게 무언가 배운 적이 없었다. 맞아도 덜 아프기 위해 몸을 둥글게 말거나, 서글픔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도 혼자 익힌 것이다.     


 어린이 풀장에서 나와 성인 풀장으로 갔다. 아빠는 수영을 하고 있었다. 멀찌감치 앉아 아빠를 구경했다. 긴 팔과 다리로 수영하는 모습이 멀리서 봐도 특출 나 보였다. 더욱 수영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휴식 시간이 되자 모두 물 밖으로 쫓겨났다. 아빠보다 먼저 돗자리에 있기 위해 뛰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앉아, 걸어오는 아빠를 못 본 척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돗자리에 앉아 휴식 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입 안에 수영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는 말이 침처럼 고였다.      


 휴식이 끝났다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아빠는 다시 성인 풀장으로 걸어갔다. 결국 말 한마디 못하고 아빠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봤다.


 어린이 풀장에 가니 벌레가 물에 떠 있었다. 무시하고 벽을 잡고 물장구를 쳤다. 물이 사방으로 튀는데도 나도 벌레도 제자리였다. 돗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마음속으로 열심히 물장구쳤었다. 어떻게 해도 아빠에게 가르쳐달라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도 나는 제자리였다. 아빠에겐 나와 벌레는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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