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를 들리기 전, 오래전에 졸업한 초등학교의 근황이 궁금해 가던 중이었다. 굴삭기가 낯익은 집을 부수고 있었다. 물을 뿌리는 인부 뒤에 서서 부서지는 집을 봤다. 굴삭기는 가볍게 벽을 밀치고 바닥을 누르는 것 같은데, 집은 쉽사리 무너져 내렸다. 인부는 뒤에서 지켜보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연신 헛기침을 했다. 죄송하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본가로 향하는 동안 무너지던 집을 생각했다. 삶은 지우고 폭력만 남기겠다는 듯이 처참한 모습이 된 그 집. 나는 그 집이 지어지던 날들을 기억하고 있다. 아빠가 잡부로 그곳에서 일했었다.
친구와 하교하던 중에 아빠를 봤다. 아빠는 쭈그려 앉아 시멘트를 바르고 있었다. 나는 아빠를 보자마자 도망치기 시작했다. 혹여나 아빠가 나를 발견하지 않았을까. 두려움에 안간힘을 다해 뛰었다. 친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냥 쫓아오지 이름을 부르긴 왜 부르는 걸까. 친구의 목소리가 멀어질수록 친구가 더욱 미워졌다.
집까지 한달음에 도착했다. 가방을 두고 다시 뛰었다. 인적이 드문 놀이터에 도착해서야 쉴 수 있었다. 원통형 미끄럼틀 안에 숨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아지트였다. 분명 아빠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덕분에 아무 이유 없이 맞았던 평소보다 더 세게 맞을 것 같아 걱정되었다. 얼마나 맞을까 아무리 예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미끄럼틀에서 나오니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슬그머니 집에 들어갔다. 술 냄새가 났다. 다시 나갈까 고민이 됐다. 술 먹은 아빠는 인정사정없었다. 발 하나를 뒤로 빼고는 살짝 문을 열었다. 아빠는 얕게 앓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엄마는 빨리 들어와 자라고 손짓했다. 나는 씻지도 않고 엄마 옆에 누워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아빠가 없었다. 엄마에게 물으니 일을 갔다고 했다. 내게도 기적이 온 것 같았다.
학교에서 내 이름을 부르던 친구와 대판 싸웠다. 이후로 집에 혼자 가게 되었다. 멀리서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본능적으로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매일 집에서 누워 있거나 때리는 모습이 아니라 일다운 일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어느 날은 벽돌을 나르고, 어느 날은 페인트를 칠하고, 어느 날은 나무를 잘랐다.
퇴근한 아빠는 때리지 않고 그냥 나를 지나쳤다. 이상했다. 아빠는 씻고 밥을 먹고 그냥 잤다. 그게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며칠을 지속하게 되자 당연하게 여겨졌다. 멍청하게도.
어느 날 가니 공사가 끝나 있었다. 완공된 집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빠가 만든 집은 멋있었다. 이 층으로 된 단독 주택이었는데 성 같아 보였다. 다시 아빠가 나보다 먼저 집에 있었다.
방심하고 맞으니 더 아팠다. 잠들기 전에 아빠가 매일 일이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소용없었다. 아빠는 일을 더는 하지 않았다.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공사장에 다시 들렸다. 집은 형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없던 일 같아졌다. 미움만 가득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