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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19. 2021

학교에서 처음 배운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자, 같은 반 아이가 내 앞에 섰다. 친하지 않은 아이였다. 아이는 내가 알몸으로 쫓겨난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귀를 의심했다. 못 들었다 생각했는지 몇 번이나 다시 말했다. 발뺌해야 했다. 그런 적 없다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아이는 놀랐는지 울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나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은 채 꿈이어라, 꿈이어라 중얼거렸다.     


 선생님 앞에서 아이는 그 날 나를 보게 된 정황을 설명했다. 신난 목소리였다. 화가 났지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뭐라 물었는데 들리지 않았다. 반 아이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콧물은 어찌 삼키겠는데 눈물이 자꾸 떨어졌다.      


 왜 하필 쫓겨난 시간이 교회 예배가 끝난 시간과 같았던 걸까. 교회 건물은 꼭 그렇게 커야 하는 걸까. 우리 집은 왜 교회 근방에 있는 걸까. 그 아이는 왜 그 교회에 다니는 걸까. 쫓겨나자마자 골목에 놓여 있는 가스통 뒤에 숨었는데 어떻게 본 걸까. 수업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속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계속 해댔다.     

 혼자 가기 집에 가기 위해서 문방구 주변을 서성였다. 집 방향이 같은 친구들이 보이지 않게 돼서야 집으로 향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은 진짜냐고 묻지 않았다. 왜 묻지 않았을까. 친구들이 내일부터 같이 안 놀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과 가까워질수록 학교부터 따라오던 걱정이 희미해졌다. 대신 아빠가 선명해졌다. 아빠가 집에 있을까. 집에 없겠지. 없을 거야. 현관문을 열기 전에 문에 귀를 댔다.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가스통 뒤에 가방을 두고 놀이터로 뛰었다. 그네를 타며 빨리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엄마는 밤을 데리고 왔다. 아빠와 단 둘이 있기에는 무서웠다. 그네를 타는 동안 마음이 진정되었다. 불현듯 아이는 왜 울면서까지 내가 알몸으로 쫓겨난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모래를 걷어찼다. 미웠다.     


 어두워지자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렸다. 아빠가 열어주었다. 뒷걸음질 쳤다. 아빠의 손은 뒷걸음질 보다 빨랐다. 아빠는 늦은 시간까지 어디 갔냐고 머리를 때렸다. 휘청거렸다. 아빠는 집에 빨리 들어가서 밥이나 처먹으라고 말했다. 눈치를 보느라 손도 씻지 못하고 밥상에 달라붙었다. 엄마도 동생들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빠는 그대로 나갔다. 술을 사려고 나간 것 같았다. 아빠가 나가자 동생들은 수다스러워졌고 엄마는 내게 어디 있었냐고 물었다. 아빠가 없을 때 마음 편히 먹기 위해 급히 먹느라 대답을 못했다. 엄마도 더는 묻지 않았다.


 아빠가 오기 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급히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어제처럼 또 쫓겨날까 봐, 또 누군가에게 알몸으로 쫓겨난 것을 들키게 될까 봐 이불을 몇 겹이나 덮고 누웠다. 숨쉬기가 어려웠지만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이불을 걷어낼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가방이 생각났다. 가스통 뒤에 있는 가방이 내일까지 잘 있기를 기도했다. 기도하는 김에 술 마신 아빠가 나를 찾지 않기도 빌었다. 가방도 발견되지 않기를 빌었다. 가방이 알몸의 나처럼 벌벌 떨고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엄마처럼 어쩔 수 없었다.



 알몸으로 쫓겨난 날의 크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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