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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an 19. 2021

따뜻한 집밥

찬바람이 불면 집밥이 생각난다.

 찬 바람을 맞으면 어김없이 탈이 났다. 병원에 가니 찬 바람이 내장을 뒤집어놓은 것이라 했다. 나는 그럴 때면 라면을 먹었다.      



 8살의 내가 쫓겨나 있다. 문을 두어 번 두드린다. 고함 소리가 들린다. 문은 화가 많다. 열려라 참깨. 암호가 틀리면 틀렸지 욕은 왜 하는 걸까. 집 옆 가스통을 두는 골목이 있다. 가스통 뒤에 숨는다. 벽에 귀를 붙인다. 고함이 들리지 않는다. 소리가 잦아들면 불안하다. 바람이 분다. 신발은 신고 나올걸. 바람이 분다. 옷을 벗으라기 전에 뛰쳐나올걸. 바람이 분다. 몸이 떨린다. 추워서가 아니야 무서워서 그렇다. 바람이 분다. 이제 추워서 떨린다. 바람이 분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아니 살려 주세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안심하고 고개를 든다.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안다.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부른다. 아파 엄마. 엄마는 대답이 없다. 깨끔발로 따라 들어간다.

 바람이 분다. 술기운에 깊이 자고 있는 아빠의 콧바람. 옷을 챙겨 입고 방구석 이불속에 숨는다. 온몸이 간지럽다. 따갑다. 콧바람이 분다. 움찔한다. 나는 간지럽지 않다 따갑지 않다 주문을 건다. 콧바람이 분다. 엄마가 라면을 끓여 왔다. 콧바람이 분다. 움찔, 국물이 맛있다. 콧바람이 분다. 따뜻한 국물이 몸 안을 안아준다. 콧바람이 분다. 움찔, 면발도 참 꼬들꼬들하니 맛있다. 콧바람이 분다. 다시 이불속에 숨어 입맛을 다신다. 맛있다. 너무 맛있다. 따뜻하다.


 콧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아니 살 수 있을까.     



 

병원에 있을 때에도 군대에 있을 때에도 고단한 날이면 사람들은 집 밥을 그리워했다. 나는 그럴 때면 라면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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