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Mar 19. 2021

나는 전설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나가던 도중 문 옆에 처음 보는 나무 몽둥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머리 부분이 돼지 발굽 같았다. 저걸로 맞으면 분명 아파 죽겠지. 나무 몽둥이가 왜 문 옆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아도 그것의 용도를 조만간에 알게 되겠지. 나는 용도를 알고 싶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다 가방에 넣었다.      


 쉬는 시간에 공책을 꺼내다 몽둥이를 딸려 나왔다. 당황하는 사이에 짝꿍이 몽둥이를 집어 들더니 선생님한테 달려갔다. 급히 일어나 쫓아봤지만 늦었다. 선생님은 몽둥이를 보더니 이것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집에서 쓰는 몽둥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왜 몽둥이를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무서워서 들고 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알겠다며 다시 내게 몽둥이를 줬다. 선생님이 돌려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말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깊게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아 보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몽둥이는 전설이 되었다. 학교를 평정하기 위해 가져 왔다거나 무서운 선생님에게 대들기 위해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몽둥이로 다른 학교 아이들을 몇 명이나 쓰러트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어느새 나는 학교에서 미친 몽둥이가 되어 있었다. 답답했다. 진짜 미친 몽둥이는 따로 있는데.     


 하굣길에도 가방 속에는 몽둥이가 있었다. 몇 번을 음습한 곳에 버렸다가 주웠다. 버리기도 겁나고 버리지 않기도 겁났다. 만약 버렸다가 아빠가 발견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10분이면 도착하는 집을 한 시간이나 걸렸다.     


 집에 들어가니 아빠는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했다. 아빠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러더니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찾기 시작했다. 나는 표정이 굳었다. 아빠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찾는 것은 내 가방 안에 있었다. 나는 가방을 멘 그대로 모르는 척 집에서 나왔다.   

   

 날이 어두워져도 몽둥이를 버릴 것이 마땅치 않았다.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어디에 숨겨도 몽둥이는 아빠 손에 쥐어질 것 같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가방 안이 제일 안전할 것 같았다. 끝내 숨기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야 집에 들어갔다. 문이 잠겨 있었다. 두드렸다. 아빠가 문을 열어줬다. 나를 걷어차더니 욕을 했다. 나는 웅크린 채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두고 방으로 들어갔다. 좋았다. 몽둥이를 가방에 숨겨두어서 다행이었다.      


 가방에서 몽둥이를 꺼낼 수 없었다. 졸업할 때까지 가방에는 몽둥이가 그대로 있었다.

 중학교 때 모르는 아이들까지 미친 몽둥이가 지나간다는 수군거렸지만 상관없었다. 진짜 미친 몽둥이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이전 02화 나는 노래 같은 친구가 하나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