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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28. 2021

사진 속 아이가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2021-02-28

 곧 이사를 앞둔 본가에 다녀왔다. 짐을 하나 둘 정리하는데 어릴 적 사진을 모아둔 앨범이 보였다. 앨범을 보는데 처음 보는 사진이 있었다. 엄마에게 물으니 달동네 살 때 찍은 사진인 것 같다고 했다. 필름에 이상이 없나 찍은 사진이었을 것이다.

 달동네에 살 때 공중화장실이나 함께 쓰던 수도는 기억이 나는데 부엌이 기억이 나지 않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문 옆에 부엌 같지 않은 부엌이 있었다고 했다. 우리 집이 원래 창고였던 것도 이야기해줬다.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고 했다. 집을 구할 때 아빠가 놀러 간 통에 혼자 계약한 집이라고 했다. 최선이었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돈을 주는 대신 카메라를 샀었다.

 내가 낮잠을 자야 이십 대 초반인 엄마는 장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떼쟁이였다고 한다. 엄마는 혹시 모를 불상사를 위해 자물쇠로 문을 잠갔다고 했었다. 엄마에게 육아를 가르쳐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눈을 뜨면 아무도 없던 방을 기억한다. 나는 잠깐 울고 그쳤다. 운다고 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을 알았다. 밖에서 잠긴 미닫이문은 옆으로 밀고 당기고 앞으로 밀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항상 몸통 박치기였다. 문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면 정말 아팠다.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울지도 않고 유유히 달동네 초입에 살던 친구 집으로 놀러 갔었다. 네 살 때다. 해 질 녘에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내 엉덩이를 때렸다. 현재의 엄마에게 물었다. 문을 잠그지 않았으면 됐잖아.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답했다. 무서웠어. 네가 돌아온다고 해도 무서웠어. 내가 그래서 가출을 못했나 보다

 나는 지금도 누워 있을 때 어딘가에 발을 올려두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 계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집보다 계단으로 이루어진 골목이 좋았다. 창고를 개량한 집은 덥고 습했다. 돗자리를 깔고 눕는 것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돗자리에서 잠시 쉬다 가시며 이뻐해 주고 주전부리도 주셨었다. 친구네 놀러 가는 날을 제외하면 거의 바깥에 돗자리를 깔고 싶었다. 바깥에 있으면 맞지 않았다. 비명은 바람을 타고 온 동네에 퍼졌지만 아빠는 이웃들이 귀는 없고 눈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엄마도 어렸고 나도 어렸던 날의 사진들. 사진을 찍어주던 아빠는 현재의 내 나이와 비슷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 아이를 어떻게 그렇게 때렸을까. 내가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릴 때 사진을 보니 귀엽다. 저 작은 입에서 비명이나 마음에도 없는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라,  웃음만 가득 나와도 모자랄 텐데.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어른인 내가 아이인 내게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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