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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12. 2021

삼겹살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구원만 맛봤다

 어릴 적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 손님이 왔던 적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친구라고 했다. 그의 얼굴을 힐끔 봤다. 검붉은 얼굴이며 파인 눈두덩까지 아빠와 닮아있었다. 악수를 하는 아빠와 아빠 친구를 보니 아빠가 두 명인 것 같았다. 순간 몸서리 쳐졌다. 아빠가 두 명이라니. 아빠는 내게 만원을 주며 삼겹살을 사 오라고 했다. 나는 얼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가 인상을 구겼다. 심장이 구겨지는 것 같았다. 나는 만원을 받아 들고 단골 정육점으로 뛰었다.    


 삼겹살을 사 왔다. 다시 그대로 나가려 했는데 아저씨가 잡았다. 불판을 중심으로 신문지를 깔아 놓은 방바닥에 둘러앉았다. 아빠와 아저씨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삼겹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연분홍빛이 허옇게 질려가고 있다. 너도 나도 공포 앞에선 매한가지구나.      


 두 사람이 술잔을 기울기를 기다렸다. 술잔을 들어 올릴 때에 맞춰 삼겹살을 집었다. 왜 급히 고른 삼겹살에는 항상 오돌 뼈가 있는 것일까. 씹어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이가 부서질 것 같았다. 눈치를 보며 휴지에 감싸 뒤에 숨겼다. 집는 것마다 오돌 뼈가 있어 몇 번을 그렇게 했지만 삼겹살은 맛있었다. 아저씨가 오돌 뼈를 왜 먹지 않고 버리냐고 묻기 전까지.     


 아빠는 붉은 얼굴로 집게를 던졌다. 맞지 않았다. 집게에 묻어 있던 육즙이 얼굴에 튀었다. 뜨거웠지만 참을 만했다. 소주병이 날아오지 않아 안도했다. 아저씨는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먹다 만 밥을 보며 도망을 궁리했다. 갑자기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아빠가 소주병을 들고 있었다. 아저씨는 아빠의 팔을 잡았다. 그 사이에 도망쳤다. 삼겹살 기름이 튀는 것처럼 빠르게.     


밖은 어느새 밤이었다. 맨발로 집 근처 골목을 배회했다. 마음이 진정되니 웃음이 나왔다. 아빠와 아저씨가 실랑이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을 닮은 천사랑 악마가 다투는 모습과 닮아 웃겼다. 웃으며 걷다 깨진 소주병을 밟을 뻔했다. 모르는 집 현관문 앞에 앉아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길 기다리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발이 시렸다. 먹다 만 밥과 삼겹살도 아른거렸다.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집 앞을 서성이며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다. 방 안은 고기 냄새로 가득했다. 아빠는 대자로 술에 취해 코를 골고 있었다. 엄마에게 아저씨는 갔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우리에겐 일상인데 다른 집은 그러지 않은가 보다. 남은 고기가 없냐고 물었다.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발을 씻고 나도 방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잠들기 전 아빠가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다음 날 잠에 덜 깬 채 아빠한테 맞았다. 그냥 때렸는지 어제 일을 기억해서 때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맞았다. 일상이니까.


 이후로 아저씨는 물론 아빠의 지인이 집에 오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아저씨가 지인에게 소문을 내서 오지 않은 건지 아빠가 자신의 추태를 인지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랬다. 아빠를 막아주던 아저씨로 인해 내 삶에 변화가 생길 거라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맞으며 아저씨를 몇 번 생각했다. 혹시 도와주러 올지도 모른다고.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구원을 바란 내가 잘못이었다. 아빠 얼굴을 한 천사라고 해도 아빠는 아빠였다. 도와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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