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할아버지 앞에 드러누워 한참 동안 생떼를 부렸다. 엄마는 도움을 요청하듯 난감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봤지만 소용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이 오른손으로는 담배를 들고 왼손으로는 병아리들을 휘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네가 똥도 치우고 밥도 주고 그래야 해, 할 수 있겠어?
나는 일어서지도 않은 채 신나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바로 전날 일이었다.
다섯 살,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던 단칸방. 조용해서 깼다. 자기 전까지 들리던 병아리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니 깜깜했다. 바닥을 더듬거리며 병아리 상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혹시나 아빠를 깨우지 않을까. 조그마한 기척에도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숨죽였다.
병아리 상자는 텔레비전 위에 있었다. 까치발로 겨우 병아리 상자를 내렸다. 상자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창문 앞까지 들고 갔다. 가로등 불빛이 창틈에서 스며 들어오고 있었다. 여린 불빛으로 본 병아리 두 마리는 마주 보고 자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두 마리 다 딱딱했다. 시끄럽다고 아빠가 병아리를 버리고 병아리를 닮은 무언가를 가져다 둔 것 같았다. 배부르게 먹으라고 듬뿍 넣어준 좁쌀도 그대로였다. 아빠가 빨리 자라고 윽박지르는 통에 아직 이름도 못 붙여줬는데.
상자를 앞에 두고 쭈그려 앉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원래 자던 자리에 누워 있었다. 지난 새벽에 있던 일은 꿈이 아니었을까. 벌떡 일어나 상자를 찾았다. 상자가 없었다. 아빠는 아침 일찍 일을 나간 것 같았다. 운다고 소리 지를 사람이 없었다. 울음이 터졌다. 자고 있던 동생들도 같이 울었다. 동네가 떠나가라 울었다. 밖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는 신발을 벗지도 않고 뛰어 들어왔다. 병아리를 부르며 자지러졌다. 엄마는 병아리가 죽었다고 말했다. 아빠가 출근하면서 버렸다고도 말했다. 죽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었다. 버렸다는 말은 알 수 있었다. 병아리 할아버지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누워 허우적거렸다. 다시 찾아와 달라고 연신 병아리를 외치며 허우적거렸다.
엄마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오줌을 지려도 멈추지 않았다. 몸 안에 있는 병아리를 모두 토해내라는 듯이 병아리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때렸다. 지쳐서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동생들이 대신 울어주는 것이 고마웠다. 밥도 먹지 않고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울음을 삼켰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마음이 변해 다시 가져왔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면 삐약이 삐용이라고 불러주고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자 아빠가 돌아왔다. 빈손이었다. 감히 병아리에 관해 물어볼 수 없었다. 오랜 기간 삐약이와 삐용이에게 좁쌀을 주는 꿈과 내가 버려지는 꿈을 번갈아 가며 꾸었다. 알록달록한 병아리를 보아도 다시는 조르지 않게 되었다. 삐약이와 삐용이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