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조직검사 결과가 빨리 나왔다.

by 조매영

금요일 오후 네 시 사십 분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ㅇㅇ내과입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내원부탁드립니다.*^^*」

뒤에 웃음 이모티콘 때문인 걸까. 네 시 사십 분에 문자가 와서 그런 걸까. 읽히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내시경 검사가 끝나던 날 의사와 간호사는 결과가 나오는데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 같다고 했었다. 조직검사를 한지 나흘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결과가 나왔다니 괜찮은 걸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병원에서 연락이 빨리 온다던 말이 떠올랐다.


퇴근 시간까지 한 시간은 넘게 남아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조직검사 후 연락이 빨리 오는 경우에 대해 검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 병원이 대형 병원보다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로는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글. 내원을 해서야 암인 것을 알려줬다는 글. 일찍 연락 오는 경우는 대체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글. 부정적인 글은 왜 이렇게 설득력이 좋은 걸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속이 부글거리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 부글거리고 있었다. 위에 문제가 있는 걸까. 장에 문제가 있는 걸까. 엄마에게 어떻게 말하지.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래도 손은 쉴 수 없었다.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그래야 게이밍 노트북을 사서 입원할 수 있을 테니까.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병원에 전화했다. 지금 가도 진료가 가능한지 물었다. 18시 10분까지는 도착해야 진료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도에 나와 있는 업무 시간은 18시 30분인데 잘못된 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가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지금 가지 않으면, 밤새 병원 생활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데스크에 앉아 있는 간호사들을 제외하고 로비는 비어 있었다. 시계를 보니 18시 15분이었다. 어느 수제 케이크 집에서 10분 늦었다고 예약한 케이크를 폐기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최대한 비굴한 표정으로 늦어서 죄송하다고 조직 검사 결과를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제일 선임으로 보이는 간호사가 원래는 18시부터 접수 마감이라며 다음부터는 일찍 오라고 말하며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다.


데스크에서 간호사는 조직 검사 결과를 프린트하더니 진료실에 가지고 들어갔다. 나도 눈치껏 따라 들어갔다. 눈이 나빠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종이에는 영어로 보이는 글자가 길게 쓰여 있었다. 영어가 그렇게 불안한 모양을 가진 글자라는 것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종이를 전달받은 의사는 종이를 가볍게 훑어보더니 단어 몇 개에 동그라미를 치며 내게 보여주었다.


결과가 나쁘지 않네요. 위는 만성 염증이고 대장에서 제거한 용종은 과형성 용종이라고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용종입니다.


좋은 결과를 들었는데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뒤죽박죽이던 머리가 정리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병실 침대에 앉아 게이밍 노트북을 꺼내며 엄마에게 괜찮다 말하는 모습이 증발하고 나서야 말을 꺼낼 수 있었다. 텅 비었지만 휑하진 않은 마음으로 집안에 병력이 있어서 두려웠다고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험 회사에 낼 서류도 받고 집으로 가는 길. 엄마에게 전화했다. 조직검사 결과 별 일 아니었다고, 이보다 더 별 일이 아닐 수는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안도 섞인 한숨이 들려왔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항상 최악만 보고 있었나 보다. 백혈병 진단받았을 때 울던 엄마가 생각났다가 한숨 따라 사라졌다.


괜히 용종 수술비로 목돈이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중에 맛있는 거나 먹자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전화를 끊고 하늘을 보니 별이 하나도 없다. 모두 땅에 떨어져 내렸나 보다. 가로등, 상가의 불빛들이 사방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불빛이 별빛을 대신하는 만큼 기도 대신 다짐해 본다. 살자. 건강하자. 두 팔도 힘껏 흔들며 걸어본다. 굴하지 말자. 너무 걱정하지 말자.


다짐은 생각보다 힘이 약한 것 같다. 집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삶이 진짜 쉽지 않나. 언제까지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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