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 된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정작 엄마를 부르는 소리는 작았다. 문을 열어달라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아빠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쌍욕은 빗자루나 리모컨과 닮았다. 어떤 방향에서 어떻게 날아올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아무 소리 없이 쾅하고 문이 열리는 것보다 좋았다. 쌍욕은 아프지 않을 뿐 아니라, 진짜 빗자루나 리모컨이 날아오기 전에 골목에서 골목으로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출발 신호가 되어 주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입안이 피맛으로 가득할 때가 되어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헐떡여도 마음은 편했다. 숨을 고르며 달을 보고 있으면 외롭지 않았다. 집에 들어갈 때도 도망가는 때에도 너는 나를 버리지 않고 잘도 쫓아오는구나.
등 뒤에 깔린 내 그림자가 들썩이는 것이 느껴진다. 우냐. 너도 잊지 않았어. 네가 우니까 나도 눈물 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내가 먼저 운 거 아니야. 너 때문이야. 안 잊었다니까 그러네. 그만 울자. 집에 다시 돌아가자.
쉬는 날, 종일 쓴 글이 마음에 안 들어 지우고 집 가는 길. 오랜만에 하늘을 봤다. 달이 있다. 짐승과 사람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데 달과 나도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려나. 달이 보기엔 아직도 내가 애 같으려나.
노년의 강아지가 주인에게 애교를 피우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드러눕고 싶다. 철문 대신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렸는데 열리지 않았다고, 아빠가 아닌 내 속에 내가 내게 쌍욕을 했다고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고 하소연하고 싶어 진다. 이제 나도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막 드러누울 순 없단다. 달아 그만 좀 유혹하면 안 되겠니.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림자가 안절부절못한 채 따라온다. 아니 못 쓸 수도 있지. 왜 네가 더 불안해하냐. 정신 사납다. 그만 초조해 하자. 집에 가자. 그래도 나는 나를 때리진 않는다. 너무 걱정하지 말어.
고마워. 그때도 지금도 너희 덕분에 외롭진 않네. 덕분에 그때도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