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약발만 잘 듣는 것이 아니었다

by 조매영

머릿속에는 어떠한 맥락도 없이 죽고 싶다는 말만 맴돌았다. 내게 죽고 싶다는 말은 무언가 포기하고 싶거나 도망가고 싶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던 칭얼거림과도 같은 말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일단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 있거나 앉아 있으면 무언가 사고를 칠 것만 같았다.


침대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이불을 힘껏 붙잡았다. 병원에서 원인미상의 열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적이 생각난다. 그때도 추락하지 않으려 이를 악문 채 이불을 붙잡았지. 그때도 살았는데 지금이라고 못 살 이유가 있나.


이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었지.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근래 있었던 일을 하나씩 추려 보았다. 평소에 먹던 것 외에 새롭게 추가된 ADHD 약이 생각났다. 억지로 일어나 약봉지를 찾았다. 새롭게 받은 약과 부작용을 검색했다. 자살충동에 관한 기사들이 보였다. 머릿속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죽고 싶다는 말은 살금살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사는 바로 다른 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내동댕이 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작용이다 확신한 것뿐인데 속이 다 시원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약발이 잘 듣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항암제는 발암물질이기도 하다는데 그러면 내 안에서 계속 서로 먹고 먹히는 중인 거려나. 집중력이 올라가는 것과 죽고 싶은 것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니라서 탈이 난 거려나. 외적인 부작용은 몇 번 있었는데 내적인 부작용은 처음이라 그런지 타격이 크다. 속으로 죽고 싶다는 말은 앞으로 하지 않아야겠다. 말도 약이라고, 고난을 견디는 마음 진통제로 썼는데 어떤 부작용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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