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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l 01. 2024

그냥, 믿음

 수건함에 수건이 남아있지 않다. 빨래를 하고 아무렇게나 던져둔 수건 중 하나를 주워 머리를 닦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엉망이다. 언제 마신 지 모르는 빈 페트병부터 시작해서 개지 않은 옷들까지. 눈을 감았다 뜬다. 여전히 엉망이다. 영화나 만화책을 보면 눈을 감았다 뜨면 다 치워지고 그러던데 왜 나는 안될까. 마법은 믿음이라던데 나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어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것일까. 집에 와 몸서리치며 잠들었다. 매번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말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다짐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 내게 다짐은 항상 어기라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말을 하기로 다짐해 볼까.


 모임에서 막내다 보니 말을 너무 아무렇게나 하는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은 그걸 또 받아준다. 가끔 나는 나를 향한 말을 타인에게 한다. 책임을 전가하고 싶다는 듯이. 나쁜 버릇이다. 나는 왜 항상 집에 와서 깨닫는 것일까.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다. 눈을 감고 뜬다. 말했던 것들은 주워 담아지지 않는다. 반성의 카톡을 보낼까 하다가 그러지 않는다. 예전에 그랬다가 놀림받았던 기억이 난다. 뒤늦게 후회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자학만 해서는 좋을 게 없다. 유익했던 대화도 복기하도록 하자.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손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잘하고 못하고는 다음 문제라는 것.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손을 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의미부여가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의미부여는 어떤 행위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동의했다. 우리는 의미부여만 하다 끝난 사람을 알았다. 그 사람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전체 거나 혹은 나의 어떤 면이었다.


 널브러진 물건들을 본다. 그제 글을 쓰다 마신 나랑드 사이다가 있다. 어제 글을 쓰다 먹고 버린 과자봉지도 있다. 나는 저것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길래 치우지 않는 것일까. 깨끗한 방보다 편한 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핑계 대마왕이다. 지금 본 김에 치우며 되는데 그걸 또 하기 싫어서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손을 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그냥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쓰레기가 있으니 쓰레기를 줍고 수건이 널브러져 있으니 수건을 개고 그냥 하는 것이다. 의미는 그다음에 부여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남들의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단 한 번도 나를 평가한 적이 없었다. 그냥 하기 겁나니까 마음에 차지 않으니까 청소를 하지 않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글 쓰는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주변인들을 평가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얼마나 나 자신에게 비겁한가.


 요즘 매일 쓴다. 그냥 쓴다. 이제는 뭘 써야 할지도 의자에 앉아 쓰면서 고민한다. 망하면 망하라지. 글 안 쓸 때가 없도록 열심히 써야지. 나름 길게 쓰인 글을 본다. 마법 같다. 그래 믿음은 역시 마법이야. 책상 주변을 둘러본다. 더럽네. 청소에 대한 믿음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청소는 그냥 글 안 쓸 때 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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