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이 병에 걸렸을 때
"선생님, 여기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다 해주세요. 저는 내일까지 아플 수 없어요. 오늘 꼭 나아야 해요."
해가 바뀌고 아이는 일곱살이 됐다.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남은 과업은 명료했다. 집에 돌아가 아이를 씻기고 재우고, 해가 뜨면 아이를 깨우고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출근하는 것. 연휴를 앞두고 끝내야 할 업무 목록이 산더미라 마음이 가빴다. 갓 응급실에 도착한 나는 죽을 병 걸린사람 마냥 엉엉 울면서 의사에게 하소연했다. 'BH 사는 그녀도 뻑하면 아프다고 쉬는데 나 따위가 왜 아프면 큰일나는 거지?' 묘한 아이러니에 잠시 혼란했다.
의사는 "진단서라도 끊어드릴까요 내일 쉬시게, 아님 그냥 입원하시게 조치할까요?" 말했다. "쉴 수 없으니까 오늘 안에 나아야한다는 거예요!" 나는 생트집을 부렸다. 의사는 "방금 나가신 분은 내일 아침 시댁에 내려가야 한대요, 몸이 저런데." 했다. 어쩌면 앞 환자의 명절노동보다는 내 처지가 낫겠다 싶어 그길로 입을 다물었다.
뜻이 맞는 동네 지인들과 함께 육아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진행 중이었다. 주에 하루는 퇴근 후 아이를 싣고 가까운 스튜디오로 내달렸다. 아이의 요기를 위해 주어진 건 단 15분의 이동시간. 스튜디오 종료시간이 촉박해 조금도 더 늦출 수 없다. 세번째 녹음날이던가. 가는 길에 패스트푸드점에 들러 산 감자튀김과 콜라를 아이에게 쥐어주고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돌연 참기 힘든 고통이 찾아왔다. '끊을까 말까. 오늘은 못하겠다고, 접자고 할까 말까. 까짓 몇십분만 버티면 끝나는데 일주일 날리는 것보단 낫겠지. 어떻게 쪼개서 쓰는 시간인데 버릴 순 없지. 나 혼자도 아니고 몇 사람의 시간인데...'
언젠가 목소리가 안나와서 새벽 라디오 펑크내고 까일대로 까인 전현무가 문득 떠올랐다. '몸을 열개처럼 쓰면서 살고도 욕 먹는 사람이 있는데 나 따위가 엄살은 무슨!' 수많은 내적갈등과 동시에 정신줄 놓은 토크를 이어가는 중, 이러나저러나 스튜디오 문닫을 시간이 왔다. 버티기를 강제 종료할 타이밍인 거다.
성인의 싸이클로 살아가는 일곱살
아이의 균형있는 생활리듬, 균형있는 식단은 모두 깨진지 오래다. 아니 어쩌면 날때부터 그런 건 가져 본 적 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언제나 성인이자 사회인인 나의 싸이클, 그리고 자취생 뺨치는 인스턴트 식단에 꾸역꾸역 맞춰진, 하나도 아이스럽지 않은 삶을 강요 받았다. 매일밤 자정이나 돼야 안팎의 모든 일과를 마친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고, 주말이면 아이 흥미와는 무관한 엄마 친구들과의 만남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살았다. 그러느라 자신의 또래친구보다 아는 이모와 삼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아이는 그날만 해도 녹음 중인 나를 이미 두 시간이나 기다려줬다. 어린이집 종일반에서 보내는, 당연한 기다림으로 치부되는 10시간을 빼고도. 다른 또래들 같았으면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각이었다.
"엄마는 지금 바로 병원에 가야돼. 배고플텐데 병원 끝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 아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어린이집 가방을 뒤적였다. 낮에 초코파이 두개를 받아왔다며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렇게 아플거면 차라리 기절해버리지. 그럼 119든 누구든 '나를 싣고 나르는 것'만이라도 대신 해줬을텐데.' 녹음 후 긴장이 풀리니 더 아파서 정신이 혼미했다. 너무 쉬운 길인데, 맨날 다니던 길인데, 여기서 20년도 넘게 살았는데, 돌고 돌고 또 돌아서 병원에 도착했다. 2000원에 주차대행을 해준다는 말이 넙죽 절을 올리고 싶을만큼 반가웠다. 얼마가 됐든 내 시간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설상가상 배터리는 3%로 내려 앉았다.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줄 수도 없었다. 진료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그냥 무작정 기다리라고 할 수밖에. 난 내 시간을 살고, 넌 네 시간을 강요당하고. 아이를 내 옆에 방치만 하고 사는 무늬만 보호자, 그게 나다.
"기침을 하도 많이 했더니 옆구리가 다 쑤셔요."
그날 아침 출근해 지껄인 첫마디였다. 나는 정말로 며칠째 앓아온 감기 때문에 기침을 많이 해서 옆구리가 쑤시는 줄로만 여겼다. 오들오들 떨리도록 추운 것도, 낯이 화끈거리는 것도, 마디마디가 쑤시는 것도, 온 몸이 그냥 다 힘들어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절로 욕이 나오는 것도 망할 놈의 지독한 감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미련함이 정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늦은 밤 응급실에서 받은 진단은 요로감염이었다.
아픈데 혼자 있는 거? 진짜 서러운 건 아픈데도 혼자 쉴 수 없다는 거야
죽을 것처럼 아픈데 내 할일을 다 마치고 아이를 챙겨가며 늦은밤 스스로 운전해 "오늘 꼭 나아야 해요!"라며 병원에 누워있자니, 아니 그것조차도 시간이 아까워서 약 빨리 들어라가고 간호사 몰래 수액줄에 달린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자니 돌연 서러움이 차오른다. 누가 아픈데 혼자 있으면 서럽다 했나. 아파도 혼자 쉴 수 없는 게 진짜 설움이라구.
슈퍼맨이라도 된 듯 나 혼자 지구를 떠받들고 있다는 망상에 쉽게 빠지곤 했지만 우습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보호자가 먼 걸음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고, 아이는 그 손에 맡겨졌으며, 나는 다음날 결근했다. 내가 하루만에 당장 낫지 않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홀로 다 해내야만 한다는, 늘 나를 옥죄는 중압감은 그저 내 오만에서 비롯한 걸까?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늦은밤, 내 보호자 중에 운전 가능자가 없는 고로 또 스스로 차를 몰아 아이를 엄마집에 내려다주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엄마도 고생 많았어. 멀리까지 운전도 하고." 떠나는 아이 말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 고열과 서러움으로 흘리던 조금 전 눈물보다 훨씬 뜨겁다.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키우는데도 아이는 잘 자란다. 자라지 않은 건 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