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사각지대? 그냥 죽으라는 말!
복지 사각지대? '그냥 죽으라는 말'
"저처럼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지만 저소득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양육지원도 못 받는 이런 사람들을 복지의 '사각지대'라고 하던데, 사각지대라는 말은 정말 온화한 말이고, 그냥 죽으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지난 4월에 충청도에서 저랑 비슷한 형편의 한 여성이 세살짜리 딸과 함께 집에서 자살을 했는데, 2개월 뒤에 발견되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위탁가정이나 입양가정 등에 해주는 지원을 보면 나라에서 돈이 없어서 지원을 안 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한부모 입장에서 정부의 마인드는 이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자식 네가 키우는 것은 난 몰라, 네 자식 네가 키우는데 정부가 왜 지원을 해줘야해? 그런데 네가 자식을 버리면 다른 가정에서 잘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주겠다.' 제 입장에서는 정말 이렇게 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출처 ↓)
내가 한 말 같지만 아니다. 어느 싱글맘 한분이 국회에서 열린 '싱글맘의 날' 토론회에 청중으로 참석, 손 들고 발언기회 얻어 하신 말씀이다. 가장 와닿는 대목은? '그.냥.죽.으.라.는.말'. 내 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저분은 누굴까. 같은 목소리가 하나 둘 모이다 보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
'어떻게 멈추지? 죽으면 끝날까?'
엄마가 되고 처음 응급실 소동을 빚은 그날, 나는 분명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생을 살아내고자 발악하는 사람. 어떻게든 '살 길'을 궁리하는 사람. 그런데 반년 쯤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죽을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더이상 이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는 생각이 수시로 머릿속을 휘저었다. 행여 지탱한다 한들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이 온 마음을 잠식했다. 그 무렵 일기는 이랬다.
'지쳤다, 고갈됐다'는 생각을 품고 하루하루 버틴다는 느낌으로 지내온 게 얼마간인지 헤아려지지도 않는다.하나는 절대 시간 부족, 또 하나는 의사결정에 대한 무거운 책임... 결국 둘 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느냐 하는 가치관과 결부되는 문제인데, 어느순간 그에 대해 고민하는 행위 자체를 멈추고 말았다. 그것을 대체하게 된 나의 고민은 오직 하나, "최적화". 다른 사람이 나의 최적화를 흐트러뜨리는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화가 났다. "해봤어 해볼만큼 해봤다고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말고 진짜로 해보고 내린 결론이라고!"
누군가 내 삶을 두고 학비를 벌면서 학교다니는 주경야독 고학생에 비유했다. 한번도 떠올려본 적은 없었지만 적절한 비유다. 그리고 그걸 해내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대단하다, 장하다, 대견하다'라는 격려와 위로 따위가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일 때가 있었다. 나는 그 칭찬을 듣고 싶어 내가 얼마나 힘들며 또 그걸 얼마나 꿋꿋이 해나가고 있는지 떠벌리고 싶어 안달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혀 대단치 않음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이번 한번만 봐줘"라는 카드가 다 떨어졌다. 하다하다 어떻게든 스스로 해보려다 정 안될 때만 꺼내 썼는데. 자꾸만 감당 못할 일은 불어나고, 더 이상 어떤 방법도 먹히지 않는다. 이미 낭떠러지에 섰는데, 물러날 곳도 없는데.
공고하리라 믿어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유연하게 흘러가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니었나보다. 지독하게도 안정된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그걸 지키기 위해 스스로 택한 것들이 내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로. 단절과 고립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다. 이 아이도 그걸 알까. 마음이 찢어지다가도 나라도 살아야겠다는 이기심이 불쑥 찾아온다. 그런 스스로를 견디는 게 힘들다.
앤더드래곤, 검, 헐크, 구몬숙제, 유치원가방, 수영가방, 휴대폰, 샤오미, 양말.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건 딱 그만큼이다. 거기에 나는 없다.
처음엔 단지 '멈춤'을 갈망했다. 그런데 이 삶을 멈출 방법이 '죽음'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나는 결단이 매우 빨랐다. 죽을 떄 죽더라도 잘 죽어야 하지 않겠나. 아량인지 오지랖인지, 가족과 동료에게 최대한 해가 가지 않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마비된 채 유서로 시작하는 글을 적어나갔다. 쓰다보니 웬 육아 인수인계서가 돼 있길래 허탈하기도 했다. '아이를 부모님께 보낼까, 친부에게 보낼까.' 내가 없는 아이의 삶을 수백번 시뮬레이션했다. 당장 결론을 내기 어려웠다. 남은 사람들이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며 아이에게 최선의 결정을 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어느 쪽이 됐든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문서를 정리해나갔다.
가장 번거롭고도 중요한 과정은 재산 정리. 당장 눈앞의 과업에만 치이다 보니 돈이 어디에 얼마큼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가까스로 여러 예적금과 보험을 조회했다. 삼천만원? 의외였다. 가난을, 혹은 가난한 자아를 내재하고 살아온 것 치곤 꽤 크게 느껴지는 숫자였다.
'힘들게 모았는데, 이 돈이라도 원 없이 쓰고 죽을까? 그럼 좀 덜 억울하겠지?'
그래서 다음 순서로 '도망'을 생각했다.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으나 나 혼자 도망쳐 이 돈 다 쓸 때까지만 살아보자 싶었다. 고생만 하다 그냥 가는 건 억울하다.
직장에 사표를 냈다. 인수인계까지는 하고 갈테니 빨리 후임자부터 구하시라 했다. 무슨 핑계를 둘러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가정도 직장도 버리고 사라질 거란 말은 꾹 삼켰다. 대표는 연말까지 두어달만 버텨달라 부탁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연간계약 형태. 마지막 힘을 쥐어짜야 할 시점, 담당자 교체가 얼마큼 치명적인지 나도 모르지 않았다. 도망칠 생각하는 와중에 회사 입장까지 헤아리고 있는 내가 한심했지만, 나는 늘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정에 약한 사람. 책임을 내려놓는 게 어려운 사람.
결국 하던 프로젝트를 연말까지 완수하기로 했다. 대표는 이듬해 1월부터 3개월 간 휴직으로 처리할 테니, 더 신중하게 고민해보고 그때 결정하라 했다. 휴직과 퇴직,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없다. 조금만 더 버티면 어차피 떠날 거니까. 대표님 뜻대로 하시라 했다. '멈춤'인지 '죽음'인지 '도망'인지 모를 다음 스텝은 그렇게 잠시 유예됐다.
그러고 얼마 못 가, 나라가 뒤집힐 듯 격동했다.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한 거다. 그 해는 2016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