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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하이팅 Jan 24. 2017

[제 19 잔] 어제와 조금 다른 국경을 넘다

독일, 그리고 BECK'S를 만나다


2015.09.07

자전거 여행 26일 차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는 영화.


사실 내가 생각하는 그 영화의 매력은 극 중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주인공, 월터의 눈빛이었다. 상상 속 장면들이 현실이 될수록 이전과는 달리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있어서 주저함보다는 나아감이 더해지는 것. 그건 필히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그렇다면 내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할머니 되면 독일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먹으면서 늙을 거야"


 구제 멜빵바지에 흰머리 질끈 묶은 한 할머니가 한 손에는 소시지, 한 손에는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펍 한편에서 웃고 있다. 그 할머니는 바로 '나'였다.

 너는 꿈이 뭐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늘 습관처럼 그 모습을 설명했다.(그게 향 후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대의 나는 지금 처해진 환경 속에서 치열하고 고단하지만, 60대의 내 모습은 아무 걱정 없이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며 그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정말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역시나 그 말 뒤에 뒤따라오는 건 '술꾼이야'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가 떠나갈 듯한 웃음이었지만, 나는 꽤나 진지했다. 사실 그 당시 '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난 하고 싶은 일, 목표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꿈'은 '꿈'으로. 왜 누구나 막연하게 그리는 환상가득한 꿈, 그런 걸로 남겨 두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꿈조차 냉혹한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탓이다.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목전에 둔 나는 늘 대답을 찾으려 했다. 

- 이 회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질문보다 타인이 던져준 질문에 맞는 나를 찾으려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고, 회사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찾겠어. 그런데 어느 날 기사를 보다가 한 구절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으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많이 알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행복해지고 싶다면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많이 알면 된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인데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참 쉬운 방법인데 난 그걸 스스로 부정하고 있었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야! 꿈이 행복과 꼭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보면 내가 잃을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스로 행복해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회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 그런 것 말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 그게 뭘까? 그때 문득 그 문장이 스쳤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 문장. '독일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먹을 거야'라는 상상 속 내 모습은 행복해 보였고, 또 그 모습을 그리는 나 역시 행복해했다. 그래. 우선 그 한 문장을 완성시켜보자. 할머니가 아닌 젊은 20대의 내 모습으로. 그럼 조금은 더 빨리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 흐릿했던 내 눈빛이 조금씩 천천히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5년 9월. 드디어 네덜란드 국경을 넘어 독일. 그곳에 도착했다. 여행 중 3번의 국경을 넘었지만 이번 4번째는 뭔가 더 특별했다. 여기가 맞아? 내가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다고? 내 두 발로? 꿈이지? 말도 안 돼! 꿈만 같았던 그 순간을 더욱 짜릿하게 만들어준 건 여러 번의 진동을 울리며 독일에 도착했다는 외교부의 문자였다. 그래. 그건 꿈이 아니라 사실이란다. 자전거를 한쪽에 눕혀두고 혼자 소리를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지금 내가 느낀 감정들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서 사진도 찍고, 지나가는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내가 독일에 왔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쉬이 떠날 수 있는 곳이기도,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할 테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휴학을 하고,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리며 연습하던 내 모습들이 스치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정말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네덜란드-독일 국경에서 머물렀다. 그 순간, 그 감정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벅찬 가슴이 조금 진정되자 다시 짐을 챙겨 오늘 약속했던 호스트의 집 Rheinberg로 달려갔다. 어쩐지 자전거가 전보다 더 가벼워진 것 같다. 이대론 날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나가던 양 떼들과 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드디어 도착한 곳. 초인종을 누르자 입구에서 환하게 반겨주는 Ralf 덕분에 오늘 역시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내게 파스타를 건네려던 그는 맥주가 먼저지? 라며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음 어떤 맥주가 좋을까... 그래. 독일에 왔으니 역시나 이게 좋겠어!"


 BECK'S.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국내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있는 브레멘의 유명 맥주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게 최고의 맥주였다. 빈 속에 BECK'S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며 감탄사를 내뱉는 내 모습에 Ralf 역시 그 맥주를 마시겠다며 한 병 더 꺼내 들었다. 자극적인 쇠고기 토마토 스파게티와 아주 잘 어울리는 환상의 맥주였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동네 산책을 하자던 그의 제안에 오케이를 외치며 집을 나섰다. 지금은 교사지만 재즈를 좋아하고 종종 동료들과 콘서트를 여는 그는 얼마 전 콘서트가 열렸던 장소를 시작으로 마을의 숨은 명소들을 안내해줬다. 라인강, 공원, 학교.. 저녁노을이 라인강에 위치한 산책로에서부터 천천히 마을을 뒤덮다 곧 어둠이 내려앉았다. 이건 꿈이 아니고 현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Ralf에게 말했다.


"오늘은 정말이지 특별한 날이야. 내가 그토록 원하던 독일에 도착한 날이기도 하고, 맥주와 함께 Ralf가 해준 맛있는 스파게티도 먹고. 그리고 지금 이렇게 두 발로 이 마을을 걷고 있잖아."

  

늘 상상 속에만 남겨뒀던 그 문장에서 '독일'과 맥주'가 진한 글씨로 채워지고 있었다.


BECK'S 오늘은 너야.
이곳이 바로 독일로 향하는 그곳인가요?
자전거를 눕혀두고!!
는 사실 진짜 내가 넘어진 것이었다고 한다.
바로 그 독일이라고!!
독일이랍니다!! 야호!!!
꺄르르 
국경을 지나 달리는 길은 너무나도 평온했고
찬란했다
또 이렇게 길거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안녕 인사도 나누고
배고픔에 간단한 샌드위치도 만들어먹고
점점 가까워진
Ralf의 동네 'Rheinberg'
BECK'S를 꺼내줄게!
환상궁합!!! 잊지못할 스파게티와 함께!!
Ralf가 공연을 연 곳
저기 저 연기를 봐
Ralf의 덕담 한 마디
Ralf의 자전거 여행 PHOTO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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