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를 담은 브루어리 'De Molen(데 몰렌)'
2015.09.03
자전거 여행 22일 차
네덜란드=풍차
이 공식은 너무나도 뻔하지만,
이 뻔함을 내세운 한 브루어리가 있다.
'Brouwerij De Molden'
(Molden : 네덜란드어로 '풍차'를 뜻함)
풍차 브루어리?
너무 식상하잖아?
사실 그 이름엔 숨은 뜻이 있는데,
지금은 굉장히 세련되고 웅장한 규모의 브루어리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예전엔 실제 풍차 안에
양조 시설을 설치해두고
맥주를 생산했다고 한다.
네덜란드 크래프트 맥주 회사 중엔
손에 꼽는 곳이라고 하니
내 여행 중 당연 필수코스일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리긴 했지만
가는 길목에 위치한 곳이라
경유지로 체크해두고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평일에 투어를 하려면
사전에 연락을 취해야 하는데
이를 몰랐던 나는
기웃기웃 외관만 구경하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Brouwcafé de Molen로 이동했다.
(Brouwcafé는
de molen 맥주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브루어리 투어는 토요일 오후에 가능하며 예약이 필수다.)
브루어리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위치해있는
De Molden 카페는
독특한 외관부터 흥미를 자극했다.
거대한 풍차, 그리고 맥주!
신나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파킹해 두고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갔더니
친절한 직원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뭘 마셔야 하지'
바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찰나
이를 알아챈 직원이
이것저것 설명해주기 시작했고,
나는 오후 라이딩을 고려해
도수가 제법 낮은
Hop & Liefde(Hop & Love, 4.8%)를 골랐다.
카페 한쪽에 자리를 잡고
한 모금 쭈욱 들이키니
세상에나.
호피함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쓴맛이
입안을 상쾌하게 해준다.
덕분에
추위에 떨었던 몸이 차츰차츰 녹기 시작했고,
카페로 뛰어드는 바람에 놓쳤던
포인트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카페 내부에 있는 소규모 양조시설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 배찌에 생산되는 양이 500리터 정도밖에
안 되는 시설을 이용했다고 하니..
전혀 믿기지 않으면서도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브루어리도 이것보단 클 텐데 말이다.)
이 시설이 세련된 외관으로 변하기까지
얼마나 지독하게,
얼마나 꾸준하게,
노력했을까 하고.
풍차 브루어리.
어쩐지 식상하고, 따분할 것만 같았는데
까면 깔 수록 작은 매력들이 돋보이는
그런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