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심쟁이의 고민
2015.09.01-02
자전거 여행 20-21일 차
여행을 시작하고
3주 만에 호스텔을 찾았다.
사람과 만나 대화 하기도 싫었고,
자전거를 타기도,
심지어 내가 여행자인 것조차 싫었다.
그저 모든 짐을 다 내려놓고 푹 쉬고 싶었다.
"당신의 방은 4층이에요"
방키를 건네던 직원의 말과 함께
자전거에 한가득 실려있던 패니어들이 떠올랐다.
어휴. 휴식은 물 건너갔다.
짐 옮기는데 체력을 쏟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어디 맛집을 찾기도 귀찮아
로테르담 여기저기를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호스텔에서 가까운 한 마트에 들렀다.
'어디 보자..'
한국에선 잘 찾지도 않던 음식이었는데
뜨끈 뜨끈 라면이 먹고 싶어 졌다.
발걸음 가볍게 라면 코너로 달려온 것과 달리
나는 한참 동안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녁 해 먹기는 귀찮으니까 컵라면?
아니다 라면은 끓여먹는 게 제 맛이지!'
들었다 놨다를 10여 분간 반복하다
둘 중 하나는 비상식량이 될 것이라며
결국 두 개다 계산대에 올려뒀다.
저녁 식사에 곁들일 맥주까지.
'컵라면? 아니야.
어젠 비도 맞았으니까 끓여먹자.
그래. 오늘 저녁은 완벽해!'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목,
내 머릿속에선 이미 라면 한 그릇을 비운 상태였다.
바글바글-
호스텔 부엌에 모여있는 외국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커다란 냄비를 꺼내 들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물을 받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기껏해야 식빵에 쨈, 치즈
냄새나는 음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라면을 끓이면
이 구역의 냄새 강자가 되는 것이다.
자전거 여행자로 다닐 때의 행색은
신경 쓰지도 않았으면서,
갑자기 냄새는 왜 그렇게 신경 쓰이던지..
그 순간 소심쟁이가 된 나는
결국 라면 끓이기는 포기하고,
비상용으로 챙겨두었던 컵라면을 뜯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불과 2초 만이었다.
뜨거운 물이 담긴 컵라면 뚜껑을 열자마자
오른손에 든 포크로 한 바퀴 휘젓기까지.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오랜만에 맡은 매운 향기에 나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콜록콜록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어...?
이게 아닌데...
오늘 내 고민이 쓸데없는 순간이었다.
(ps. 라면은 컵라면 봉지라면 할 것 없이 다 똑같이 매운 냄새가 나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