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부부와 함께 나눈 베스트말레(Westmalle)
2015.08.30-31
자전거 여행 18-19일 차
자전거 여행자들이 호스트 집에 방문하면
꼭 듣는 질문들이 있다.
물 필요하니? 넌 맥주가 좋겠지?
배는 안 고프니? 맛은 어떻니?
잘 잤니?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대답하는 말이 있다.
가리는 음식도 없어요
입이 짧지도 않아요
세상에 처음 보는 음식이라도
제겐 다 맛이란 게 있네요!
덕분에
호스트들이 차려준 음식들을
늘 두 그릇 이상 먹는다.
매일 장거리를 달린 탓에
배가 고팠던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 본 사람들이 내게 베푼 호의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감사 인사이기도 했다.
나를 위해 어떤 음식을 할까 고민하고,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시작하고,
행여나 입에 안 맞으면 어쩌지.
못 먹는 음식이면 어쩌지.
그들의 고민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요리들.
당연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오늘도 어느 때와 똑같이 후식까지 싹 비우고
맥주 한 잔을 나누던 그때.
Marc부부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말이야.
얼마 전에 한국인들이 다녀갔어.
그런데 밥만 먹고 바로 방에 들어가더구나.
피곤했을 수도 있고,의사소통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분명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와 대화를 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질 않아서
조금 실망했어. 그래서 우린 한국인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는데 너를 만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어.
넌 뭐든 잘 먹고, 또 노력하려 하고,
덕분에 우리가 더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고마워 Ha!
그때 느꼈다.
한 사람으로 그 나라 전체를 평가할 순 없지만
내가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다음 여행자
더 크게는 국가의 이미지로 직결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그게 긍정적으로 이어졌다니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또 이제야 느끼는 거지만
한 그릇 두 그릇을 비워가던 내 모습이
그들에겐 마음을 내줄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잘 먹으면 복스럽다고들 하시는데
아마 이를 바라보는 그들도
딱 그 기분이 아니셨을까 싶다.
그 이후론 꼭 빼놓지 않고 하는 인사말이다.
ps) 얼마 전, 유럽 자전거 여행을 하던 한 여행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Marc부부네서 머물고 있는데 저의 얘기를 신나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다음번엔 신혼여행으로 꼭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던 두 분인데, 너무 늦지 않게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