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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Mar 17. 2024

명상 쉬어가기

해리포터와 함께

명상과 해리포터


 해리포터를 참 좋아한다. 인생 영화 두 편을 꼽으라면 '타짜'와 '해리포터'다. 해리포터 이야기가 오늘은 좀 더 끌린다. 어릴 때는 어린아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만큼 강렬한 해리포터의 세계관에 끌렸다. 며칠을 꿈속에서 마법사로 살았다. 그만큼 강렬했다. 요즘은 명상에서 닿은 마음이 해리포터에서 은유로 표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다시 끌린다.


 요즘 해리포터가 다시 읽힌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선악의 구도에 관심이 간다. 해리일당과 볼드모트 일당의 싸움.

 그동안 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 좀 짜치는 부분이 있어도 무시하고 '절대선'이었고, 마음에 안 드는 인간들은 죽여버리고 싶은 '절대악'이었다. '이었다'라는 과거형을 쓰는 것만 봐도 얼마나 얄궂은가? '난 지금은 그렇게 안 하는데?'라고 물러서며 또다시 '절대선'을 자처하는 꼴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 때는 명상을 깊이 하다가 통곡을 쏟아낸 적이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머리통 속에서 척수액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 내면 깊이서 짙은 악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해리가 호크룩스를 하나씩 깨부술 때마다 호크룩스 일부인 해리포터 자신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어느 순간 나 자신이 악의 호크룩스인 것에 마음이 이르렀고, 서늘해졌다.


그럼 이제 부처님이 됐을까? 전혀.


 해리포터에서 호크룩스는 7개지만 내 인생의 호크룩스는 그 강도와 깊이를 알 수 없다. 내 안에서 히틀러의 잔인성을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나는 세상을 연민과 아련함의 세계로 보았다.  물론, 지금은 '저 새끼 왜 저래?', ' 난 역시 좀 낫지 않을까?'라는 헛소리인 마음 상태에 머무르며 다시 악이 쏟아진다.

 나는 타인은 쉽게 저주하면서, 그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고 나면, 나도 타인도 그럴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서는 나약한 존재다. 자신을 미워하는 대신 끌어안으면서 미워하던 타인 역시 용서하는 쪽을 택한다. 얼마나 병신 같은가. 냉정하고 차가운 논리의 시선으로 타인과 세계를 재단하는 그 뻣뻣한 용기는 어따 내팽개쳐두고, 내가 병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쭈뼛쭈뼛 '나만 병신이긴 싫으니 너도 그럴 수 있어'라고 내빼는 꼴이. 이래서 남자새끼들은 다 애새끼들이며 치사한 존재다


 다행인 것은 내가 병신인 것을 뼛속깊이 아는 경험 한 번이 인생의 궤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원래 모든 나선형으로 나아간다. 한 번에 직선적인 변화 곡선을 그리는 건 없다. 그런 건 문법적 환상이다. 나아가다가 처박히고, 나아가다가 처박히고 그러다 한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아는 변화다.


  스스로에게 악이 깃들어서 날뛰고 있음을 알고, 그 악이 자의식을 비대하게 키워내며 스스로를 좀먹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는 인지를 통해 악을 길들이는 힘을 조금씩 기를 때 내가 보는 세계에서 고통을 조금씩 밀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물론, 악의 중심을 순환하면서 나선형으로.


아, 비트겐슈타인 형님이 이렇게 말했던가.


“행복한 사람의 세계는 불행한 사람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이다.”(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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