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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Apr 03. 2024

명상으로 박살 내기

2023년 12월 9일 명상일지


 명상을 하면서 '자아'를 비우는 과정에 이르러 비로소 자의식이 양날의 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의식은 흩어지고 다시 모이고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을 겪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가 흩어지는 과정에서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나'가 흩어지니까 자존심이나 시시비비의 선이 흐려지고 좀 유연해지는 것 같다. 한편,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든 우리들이 역설적으로 삶을 '제대로'살고 있지 않아서 미련과 부족함에 붙잡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유의식이 자의식을 튼튼하고 높이 쌓는 듯하다. 자의식을 흔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거꾸로 욕망이 흩어진다. '나라는 것은 타자의 총합이다'라는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그저 자연스럽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고, 영원한 슬픔이나, 영원한 기쁨, 원망 따위는 없고 찰나에 매달려 있는 자아의 의지라는 것에 이른다. 그저 자연스럽다면 모든 것이 그뿐이고, 부자연스러움은 온 세계가 나를 이방인으로 밀어내며 공격한다. 온전히 비우고 또 비워 널리 마음이 닿는다. 몸도 생각도 마음도 내 것인 것이 없다. 잠시 유한 속에 깃들어 있다가 무한으로 돌아간다. 


돌아보면서 


'자아'가 해체되는 경험은 귀하다. 자아가 흐트러질 때 그 사이로 참회나 회한이 몰려들어오면서 겸손에 이른다. 급작스러운 사별이나 이별에 충격을 받아서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사람이 갑자기 '다 내 탓이오~,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면서 참회도 하고 사과도 하면서 다니다가 좀 나아지면 다시 '내가 언제?'라는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은 명상에서 '자아'가 부서지는 경험을 깊이 하면 사람이 공포도 좀 느끼고, 겸손해지기도 하고, 생채기가 나기도 하는 것과 비슷한 듯하다. 

 자기를 계속 부시면서 '에고'를 떠받치고 있는 그놈이 정말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후회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2023년 12월에 쓴 명상일지를 보니, 깊은 마음에 이르렀던 듯하다. 지금은 저 정도의 깊이 상태가 아니어서 깊은 느낌만 받는다. 무슨 도인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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