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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Apr 06. 2024

덧없다는 말에 공명한 날

명상 2024-04-16

그저께 명상을 다녀왔다. 명상 선생님께서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Q: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까?

A: 네. 있어요. 

Q: 지금쯤이면 걸리는 게 있으면 안 되는데요.

A: 계속 걸립니다. 뭔지는 모르겠어요. 


이 문답은 직관적인 문답이다. 머리 굴려가며 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확인하는 것 따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냥 아는 무언가다. 내 마음에 골이 파여있는 게 있고, 거기에 걸리는 게 있는지 없는지는 단박에 안다.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기로에 있었고, 마음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그간 명상을 하면서 부수고, 보고를 반복했다. 마음은 우리를 함정에 자주, 깊이 빠뜨린다. 그 마음을 머리로 안다고 한들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없다. 그저 단박에 깨닫고 뛰어나오는 길 말고는. 단박에 깨닫고 나온다 한들 다시 함정에 빠지는 게 마음 같다. 

 여하간, 마음이 답답했다.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언덕도 오르고 설산도 넘으면서, 비에 쫄딱 젖으면서 드디어 햇볕이 따사로운 평지에 섰나 싶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웃어도 되는 벌판에 선 줄로 알았다. 그런데 앞에 거대한 설산 하나가 다시 나타난 기분이었다. 명상을 해보았다면 누구든 이 마음을 아실 거라 믿는다. 


길은 정해져 있다. 


 오늘 저녁에 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명상을 하면서 다시 펑펑 울었다. 인생의 '덧없음'을 온 마음으로 느끼면서 나오는 통곡이었음을 안다. 그간 살아온 온 인생이 그저 찰나라는 마음이 일었고, 한참을 계속 울었다. 슬픔 때문에 나온 눈물이기보다는 '덧없음' 때문에 나온 눈물이다. 마음속에 걸린 모든 게 깨끗해지는 마음이 일었다.


  선생께서 또다시 물을 거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요


네, 나는 또 대답할 것 같다. 옅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느껴진다 한 점의 덩어리가 마음에 걸려있다. 동시에 분명히 느껴진다. 내가 원래 가진 결이 회복되고 있다. 마음에 타인에 대한 미움과 화가 줄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마음이 줄고 있다. 아차, 위대한 프로이트 선생께서는 투사라는 개념을 쓰셨고, 좀 더 문학적인 니체 선생께서는 심연을 오랬동안 들여다 보면, 그 심연 또한 나를 볼 것이다라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타인을 읽을 때 무미건조함이 아닌 감정으로 읽는 다면 십중팔구 그건 읽는 이의 마음이다. 



나는 몰랐다.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인 것을 몰랐고, 클래식을 듣고, 펑펑 우는 사람인 몰랐다.


 스스로 뭔가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를 직관적으로 구분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는 건 기쁜 마음이다. 노력한다면 본래의 나를 회복하는 건 당연히 정해진 길 같다. 그 길이 오프로드인 것은 견뎌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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