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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Apr 12. 2024

자퇴했을 때

어땠었더라

자퇴하던 날


대학교 1학년 때 자퇴했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된다고 하도 난리들을 쳐서, 그러면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교를 가서 처음으로 생각이란 걸 했다. 


'나는 여기 왜 왔지?' 


수업을 빼먹고, 혼자서 미친놈처럼 새벽기차를 타고, 눈을 껌뻑거리면서 8시간을 내리 달려 바다를 보러 갔다가 한두 시간 만에 돌아왔다. 서울숲에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앉아서 이유도 없이 울어댔다. 연애를 했지만, 병신같이 망가진 당시의 나라는 놈을 좋아할 사람은 당연히 없었기에 당시 여자친구는 몇 달 만에 나를 튀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는 여자친구였다. 그렇게 매일을 부서지다가 결국 자퇴했다.


 부모님께 말했다. 당연히 반대했고, 나는 그냥 밀어붙였다. 아버지는 치졸하게 문자로 말했다. 자신의 어떤 말도 통하지 않자 이렇게.


"엄마가 힘들어한다, 너 자퇴한다는 거 때문에"


아버지의 전략을 알았고, 그 치졸함도 알았다.  그럼에도, 자퇴하기로 했다. 나는 정말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사회화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선택이었다. 


당시에는 부모를 설득할 논리도 없었고, 내 마음도 몰랐다.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줄도 몰랐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퇴해야 한다는 일말의 마음뿐이었다. 당시에 나는 내가 그저 20년 동안 길들여진 개새끼였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던 거고, 막 그 목줄이 불편했었 던 때였는데 몰랐다.


 교무처에 있던 분의 사인도 받아야 했고, 그분은 자퇴 사유를 물었다. 


"집안 사정이 힘들어져서 제가 돈을 벌어야 합니다"라고 더 이상 토달 수 없게, 가장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고 납들 할만한 대답을 했다. 거기다 대고 "나 죽을 것 같아서, 자퇴해야겠다"는 비논리적이고, 얼토당토 앉은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자퇴를 하고 나서는


 자퇴를 하고 나서 방구석에 처박혀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할 게 없었기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20년간 읽지 않았던 책을 읽었다. 자퇴하고 읽은 책들이 나를 구원하기 시작했다.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개졌다.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고 읽었지만, 계속 눈물이 흘렀다. 사르트르를 읽으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김연수작가를 읽고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을 읽고는 문학을 배웠다. 돌이켜보면 여러 사람들을 지나왔지만, 니체, 사르트르, 한강, 김연수만 오롯이 기억이 남는다.   


 어딘가 고장이 나있던 그때, 나만 병신 같다고 생각하면서 열등감이 폭발했던 그때의 나를 위로하던 네 분께 인생을 걸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분들이 아니라면 나는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복학을


 몇 년 동안 혼자 이런저런 것들을 해보다가 나는 결국 돈만 더 내고 재입학을 했다. 학교 울타리밖이 무서웠던 길들여진 개는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만약 ~ 라면'같은 질문은 하는 법이 없고,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짓을 반복했을 거니까. 그럼에도 누군가 


"20대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복학하지 않고, 들개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거다. 의미 없는 문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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