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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Apr 19. 2024

명상하면 좋아지는 것들

비로소

명상하면 비로소 좋아지는 것들


 우선, 공허함과 외로움이 완화된다. 20살부터 지금까지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가슴 중앙에 구멍을 뚫고 다녔다. 원래 인간은 그런 줄 알았는데, 안 그런 사람들도 많더라. 요즘 들어서는 그 구멍이 메워지고 있다. 아마도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해서 그런 것 같고 욕심이 줄어서 그런 것 같다. 욕심이 줄었다는 문장을 보고 미니멀리즘, 무소유 이런 걸 상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유소유가 좋고, 절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욕심이 줄었다는 건 내가 내 한계를 확인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한계를 알고 인정하면, 내 한계 밖에 것들을 원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된다. 내 한계 밖에 것들을 걱정한다는 건 마치 "만약 내가 날개가 나서 하늘 날다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와 정확히 같은 질문이니까 쓸모가 없다.

 욕심이 줄면 공허함과 외로움이 완화된다. 외로움은 내가 나를 모르는 데서 기인하는 마음인 듯하고, 공허함은 신기루를 자꾸 좇아 다니면서 생기는 허망함 같다. 욕심이 줄어들면 외로움과 공허함의 뿌리를 제거할 수 있다.


둘째, 좋고 안 좋음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살면서 외국말 공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고, 늘 곁에 두고 익혔었다. 좋아하는 놀이 같은 거였으니까. 한동안 한국어와 독일어 번역사로 일했었다. 외국말을 곁에 두고 늘 지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명상하기 전까지는 Polyglot(4개 국어 이상의 다중언어 구사자)을 추구하면서 언어 두세 개를 더 익히고 있었다. 미리 얘기하면, 명상을 한 어느 시점부터 나는 외국말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동안 외국어를 열심히 했던 건 좋아서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잘하는 거 = 좋아하는 거'로 묶어서 더욱 나를 멋지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걸 알았다.


 명상은 무의식에 각인된 사회나 부모의 목소리를 보여주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무의식에 각인된 내가 아닌 목소리를 지워내는 건 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건 미리 누설한다.


셋째, 의미부여를 멈추고 현실을 직시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냥 일어나는 거지 어떤 의미가 있어서 신의 뜻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불행한 일 앞에서 '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상태 안 좋은 자문을 하기도 하고, 좋은 일 앞에서는 '역시 나는 그럴 자격이 되지'라며 또 상태 안 좋은 나르시시즘뽕을 맞는다. 불행이나 행복은 어떤 사건을 두고 사회나 우리 스스로 의미부여 하는 것일 뿐이고 사건은 그냥 일어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정도 되면 의미부여를 하려다가도 멈추게 되고 일어나는 사건은 그냥 일어났을 뿐이라는 쪽으로 마음이 선회하여 현실을 재빨리 직시하며 수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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