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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May 09. 2024

인간의 바닥

네가 죽어서 참 좋구나 그런데..


 고등학교 때 죽고 못 사는 친구 하나가 있었다. 죽이 잘 맞았던 것인지 죽이 잘 맞아야 했던 것인지 지금은 분간할 수도 없지만 매일을 함께했다. 그 친구에게는 다른 친한 친구들이 몇 있었고, 나는 내가 제일 친한 친구여야 한다며 속으로 질투를 하고 있었다. 20살이 되어 우리는 다른 대학교로 찢어지게 되었고, 얄궂게도 내가 질투하는 내 절친의 친구와 나는 같은 학교로 가게 되었다. 으레 상황이 변화하면 그렇듯 절친과 나는 1년께를 만나지 않고 잘 지냈다. 내가 질투하는 친구와 나 역시 친구? 사이였으므로(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우리는 종종 교내에서 마주쳤다. 물론 내 절친과 보게 되지 않게 되자, 내 절친의 친구에 대한 질투심도 사그라들어 한 동안은 그간 느끼던 절친의 친구에 대한 질투심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질투하는 그 친구가 죽었다고 장례식장 주소를 알려줬다. 나는 담임의 전화를 받기 전 1주일 전 교내에서 죽은 친구와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친구가 죽었다. 그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담임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 마음에는 1년께 잠자코 있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가 죽었다니 이제 내 절친은 나만의 절친이지"


 그런데, 마음이 묘하게 흘러갔다. 내가 가장 질투하던 사람이 죽었으면, 질투심은 사라져야 하는데, 마음속에 질투심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내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지 스스로의 비참한 바닥을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인지가 되었을 뿐이지 나는 화들짝 그 순간을 외면하고 마음 깊이 묻어두었다. 묻어둔 감정은 언제나 다른 가면을 쓰고 더 큰 힘으로,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명상을 하다 보면 자꾸만 자신의 바닥을 시험하고 경계를 확인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하고, 참회의 순간을 지나 마음이 회복된다. 한 줄로 쓰기엔 크고 무거운 시간이다.  

 명상을 하다가 20살의 저 사건이 떠올랐고, 질투의 대상이 죽었음에도 사라지지 않은 질투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질투심의 원인은 당연히 내 마음에 있기 때문에 죽은 친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였다. 나는 내 절친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고', 그 경쟁자를 질투했을 뿐이다.


 내 것을 나만 온전히 가져야 한다는 마음, 내 것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참인명제, 가져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지구상의 대명제. 이 명제들을 거스르는 모든 사람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작동하는 마음이 잘 작동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라 하면 나 스스로도 포함된다. 인간은 이 마음을 갖는 한 스스로를 파괴한다.



 우리는 돈을 필요로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좇아본 사람은 안다. 돈을 추구하되 집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돈을 추구하는 행위에는 돈이 왜 필요한가에서부터 어떻게 벌 것인가를 전략적으로 구상하고 한 걸음 다가가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때, 한 걸음 한 걸음 바닥만 보고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같은 마음과 같다. 돈에 집착하는 것은 뭔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욕망만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돈이 왜 많아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그저 소유욕만 남은 껍데기 상태를 의미한다. 산꼭대기를 보면서 나는 왜 저기에서 태어나지 않았지, 나를 태워다 줄 헬기는 안 오나 와 같은 망상을 하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그런 상태가 돈에 대한 집착만 있는 상태이다. 그 사람은 이미 돈의 노예이며 돈을 다룰 그릇이 아니다.  


 

우정과 사랑


 사람은 가질 수 없다. 보다 정확하기 말하자면, 가지려고 든다면 그 사람을 갖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가졌다는 내 마음을 갖게 된다. 그 사람을 가졌다는 그 마음이 나중엔 그 사람을 공격한다. '넌 내 것인데 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 '넌 나랑만 놀아야 돼' 같은 마음이 일어난다. 뭔가를 가지려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마음은 세상에 대한 불평이 늘고 스스로를 이뻐하지 않게 될 거고, 마음에 부침(浮沈)이 일어나는 주기와 폭이 점점 커져서 약을 먹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상대방을 향한 진짜 우정, 진짜 사랑은 내 것을 포기할 때 기쁨을 느끼는 마음에 이르러 그 충만함을 느낄 때만 가능하다. 소유욕을 통제하고, 우정과 사랑을 추구는 하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는 그런 상태에서만 우정과 사랑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피똥싸면서 내 바닥을 계속 확인하고 경계를 넓히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직관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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