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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고양이상점 May 24. 2024

지는 게 왜 이기는 건 줄 알아?

져주는 게 아니야, 정말 질 수밖에 없는 거지.


 작은 음식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이 많다. 가게에 오는 사람들은 친절하거나, 평범하거나, 무례하다. 친절한 사람들은 드물고, 평범한 사람들이 제일 많고, 무례한 사람들은 간간히 있다.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무례한 사람들이다. 욕설을 하거나, 막무가내로 환불해달라고 하거나, 이미 음식이 거의 다 준비되었는데 취소하거나, 문제가 없는 음식을 문제삼거나 등등.

 

 최근에 문제 된 두 건을 소개한다.

 

 1. 며칠 전에 한 손님이 음식을 포장해 가고 얼마 안 되어 전화가 왔다. 자신이 늘 먹던 음식을 그날도 시켜서 포장해 갔는데,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소스를 뿌렸더라고 항의를 하셨다. 포장해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고, 조리과정이 간단하기도 했어서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서 제공했다. 손님한테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다고 했고, 내 기억이 틀릴 수는 있으니 괜찮다면 사진 찍어서 한번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손님이 버럭 말했다.


손님: "아니, 무슨 사진을 보내. 그럼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이거 맨날 먹는 건데,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거냐고?"

 

갑자기 불어닥친 화딱지에 뱃속에서부터 열이 뻗쳐서 올라오는 걸 느끼면서 나는 2초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게 아니었고, 쉬었다가 말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열이 뻗치는 걸 느끼고 있다가 번뜩 '아씨, 화가 올라왔네'라면서 태세전환을 시작하기까지 2초 정도 걸렸을 뿐이다. 2초가 지나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 : "아~ 손님,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까 제가 뿌린 게 맞네요, 깜빡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 나서 손님과 한 두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손님: "다음부터는 이런 거 뿌리지 말고 그냥 줘요? 알겠어요? 나 이거 안 좋아합니다. 아, 그리고 사진 찍어서 보내줘요?"


나: "아, 사진은 괜찮습니다. 제가 잘못한 게 맞습니다. 사진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소스 뿌려져 있는데 괜찮으세요? 환불해 드릴까요?"


손님: "아니, 됐어요. 다음부터는 그냥 줘요"


이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2.

 화장실을 잠깐 다녀왔는데 다른 분이 전화로 손님응대를 하고 있었다. 난처한 듯 보여서 수화기를 넘겨받았다. 중간에 전화를 넘겨받은 거여서 영문도 모른채 날카로운 목소리에 쉬지 않고 귓전을 때렸맞았다.


나: "네, 손님 저랑 얘기하세요, 어떤 일 때문에 그러세요?"


손님: "아니, 다른 사장님이 지금 가게는 잘못이 아예 없고 나 몰라라 하는데, 배달완료가 됐다고 해서 나가봐서 음식이 없는데 가게는 책임이 없어요?  ---(중략)--- 내가 그 가게 자주 시켜 먹는데, 그 지점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단골 하나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돼요 알겠어요?"


나: "손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저희가 배달대행업체에 한번 알아보고 --"


 손님은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하며 말을 이어가는 중에 전화를 뚝 끊었다. 손님은 대화 중에 안 먹겠으니, 취소나 해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배달업체 팀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배달기사님께 확인하고 회신 달라고 하나씩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손님은 환불을 해달라고 했으나, 계좌도 묻지 못하고 전화가 끊겨서 나는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손님한테 전화를 걸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배달업체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확인을 했는데, 기사님은 제대로 음식을 놓고 요청사항까지 잘하고 왔다고 얘기했다고, 그러면서 손님이 음식을 먹고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손님이 음식을 환불해 달라고 했으니, 자신들이 음식값은 환불하겠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배달업체 입장에서도 사실 환불해 주는 게 억울할 수 있을 텐데, 가게가 갑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을 하면서, 내가 손님에게 전화해서 계좌도 받아야 하고 다시 대화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더니, 배달업체 팀장은 '아, 손님이랑 다시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반문하시길래, '아, 그럼 꼭 연락해 봐야겠네'라고 생각하면서, 그럼 일단 환불해 주시고, 일 마무리되면 다시 연락드리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손님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 다시 손님에게 전화가 왔다. 조금은 진정된 말투였다. 요지는 사장님이 사과도 하고 친절하게 해 주셨는데 자기가 아까는 너무 흥분해서 화를 낸 것 같아서 죄송하다. 배달기사랑은 만나서 얘기해 봤는데, 기사님은 분명 집 앞에 놓고 가셨다고 하고 하시면서도 죄송하다고 연신 하시길래, 알겠다고 가게 사장이 취소해 주기로 했으니, 그냥 가시라고 정리를 했더란다. 나는 계좌를 받고 취소를 해줬다.

 

 손님이 5분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밑에 집에서 산책 나가려고 문 열었는데, 음식이 있어서 주소를 보니 윗집이라 대신 전달받았다고. 나는 배달업체 팀장에게 전화해서 사태가 어떻게 흘렀는지 다시 전했고, 팀장은 죄송하다고 하고 이 문제는 끝이 났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나는 부러 태세전환을 한 게 아니다. 속으로 '이 새끼한테 져 줘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이 사람 눈에는 이게 진실이니까, 부당하게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을 해서 화딱지가 난 거다. 내가 아무리 내 사고회로에서 아니라고 항변해 봐야 저 사람한테는 헛소리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을 뿐이다. 나는 손님한테 져 준 게 아니고, 정말로 손님의 입장에서 사태를 봤을 뿐이다.

 이 대화에서 져주거나 지거나 할 여지는 없다. 져주는 건 내 입장을 고수하지만, 상대방을 생각해서 내 입장을 한 수 접는다는 의미겠고, 지는 건 서로의 입장이 부딪혀서 논리적으로나 힘에서 패배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겠다.


그저 나는 승패에서 빗겨 났을 뿐이다. 다만, 내가 상대방의 입장에 완전히 선 순간에 끓어올라오던 화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귀전을 때려 맞는 비난과 날 선 감정적 공격을 받으면서 내 마음에는 전혀 동요가 일지 않았다. 왜? '상대방이 저렇게 화가 났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지고서 상대를 대하면, 진심으로 죄송하다. 그럴 수 있다. 나 같아도 그렇겠다 따위의 말이 저절로 나간다. 내 입장에 서서 왜 그렇게 화를 내시냐부터 사태의 내용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따박따박 굴어봤자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편, '10분 정도 있다가 손님한테 전화를 해야지'라는 생각은 전략적으로 군 거다. 조금 진정이 되면 얘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나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에도 져준 게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 서려고 노력해서 순간 그 입장이 되었을 뿐이다.

 

 배달업체 팀장이 "손님이 음식을 먹고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다"라고 말했을 때, 내 입장에 서서 결론이 너무 빠른 거 아니냐, 확인된 게 뭐냐 등등으로 얘기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저 팀장이어도 저런 마음 들 수 있겠다. 우리 모두 어릴 때 선생님한테 혼날 때 쟤가 했어요라고 이를 때 마음을 경험해보지 않았나? 지금 그런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런 면을 많이 가지고 살지 않나?'라고 자문하면서 그 사람의 입장에 섰을 뿐이다. 물론, 배달이 잘못된 것은 알려주고, 앞으로는 착오가 일어나는 이런 일이 없으면 한다고 괜스레 강변하면서 전략적으로 일러두기는 했다만.



 명상을 해보면 안다. 지는 게 이긴다는 뜻을. 갈등이 일어날 때 정말 상대방 입장에 설 수 있다면, 내게는 어떤 감정적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상대방과 같은 편에 서있다. 갈들해결이 안 되는 게 이상하다. 갈등이 해결이 되고, 나는 내 입장을 내려놓음으로써 내 마음에 동요를 제거했다. 다만 나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 선다는 건 잘 되지 않는다. 당당하게 나는 상대방 입장에 섰지롱? 이라고 쓴 것 같다만, 열 번이면 끽해야 한두 번 아주 상태가 좋을 때 내 입장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내 입장에서 탈피하여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안다. 내 입장을 놓는 것은 나를 이겨야 가능한 것이고 더 큰 나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것과 상대에게 지는 것이 사실은 그 어떤 패자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훈훈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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