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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 Dec 30. 2021

보호자

엄마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는 일은 내게 익숙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무렵, 어머니가 당뇨 판정을 받고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니셨다. 간혹 입원하시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렸던 난 정확히 엄마의 병명도 건강 상태도 알지 못했고 그저 엄마가 조금 아프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엄마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말마다 엄마와 함께 당뇨센터에서 칼로리에 따른 인슐린 주입량에 계산법에 대한 교육을 듣고 엄마에게 알려드리기도 했다.

그때까지도 난 그저 엄마와 함께 온 딸이었다.


엄마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몸에서는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외부 기계를 통해 인슐린을 공급받아야 하는 당뇨병을 앓고 계신다. 체내 분비가 안되고 조절이 어렵다 보니 섭취한 칼로리보다 인슐린 외부 주입량이 많으면 자다가 저혈당 쇼크가 올 수 있다.


20대 중반쯤 됐을 때의 일이다.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안방에서는 아버지가 주무시고 거실에서는 엄마가 주무시고 계셨다.

조금 열려있던 방문 사이로 잠꼬대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거실로 나왔더니 엄마가 중얼중얼거리고 계셨다. 엄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잠꼬대가 아닌 앓는 소리였다.

엄마를 깨우려 몸을 흔들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다. 불을 켜고 엄마의 상태를 확인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엄마를 일으켜 세워 소리쳤다.


"엄마! 정신 차려봐! 엄마!"

엄마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세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무서웠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눈물이 저절로 흐르고 있었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빠가 나오셨다.

아빠는 엄마를 보시더니 차분하게 119에 신고하시고는 엄마에게 다가가 말을 거시며 엄마 괜찮다고 놀란 나를 진정시켜주셨다.


119 구급대원분들이 오셨다.

혈압을 재기 위해 엄마의 몸을 만지니 갑자기 돌변해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무서워 멀리서 바라보며 울기만 했다.


구급대원분들이 오셨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 엄마를 진정시킨 것은 다름이 아닌 아빠였다.

내게 설탕물을 타오라고 하시더니 엄마에게 먹이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엄마의 눈동자가 초점을 찾고선 그제야 정신이 드셨는지 주위를 둘러보셨다.

" 이게 다 뭐야? "

갑자기 자다가 일어났더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당황스러워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나서야 웃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자다가도 새벽에 한 번씩 엄마의 숨소리를 듣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고 결혼을 망설인 이유 중 하나도 이것 때문이었다. 아빠는 주말마다 오시기에 내가 엄마를 챙겨야 하는데 결혼해서 나가 살면 엄마 혼자 계실 때 또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너무 무서웠다.


결혼 후 신혼집을 친정집과 가까운 곳으로 구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매일 밤 자기 전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전화하지 않은 적이 없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밤이고 새벽이고 친정집으로 뛰어가곤 했다.


한동안 전화를 해도 시큰둥하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하셨던 엄마. 내게 서운한 게 있으신가 싶었던 어느 날 내게 말하셨다.

"건강검진을 했는데 폐에 뭐가 있어서 검사했어.

일주일 뒤에 결과 들으러 오래"

순간 이것 때문이구나 싶었다.

"별거 아닐 거야. 휴가 낼 테니 같이 가자"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엄마와 병원을 찾았다.

엄마 손을 꼭 잡고 말이다.

대기석에서 엄마와 함께 앉아 내가 물었다.

"무서워?" 그러자 엄마가 말씀하셨다.

"응 조금 무서워"


엄마가 겁이 많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늘 "무섭긴 뭐가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하며 센척하시던 엄마가 처음으로 내게 무섭다고 하셨다.


"진짜 별거 아닐 거야 엄마. 혹여 안 좋은 거라고 해도 빨리 알아서 치료하면 되지. 내가 있잖아. 괜찮아"

엄마 손을 다시 한번 꼭 잡았다.

그렇게 진료실에 같이 들어갔다.

다행히 단순한 혹이라는 결과를 듣고 나서야 엄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으셨다.

진료실에 나와 마음이 가벼워지셨는지 내 손을 잡고 흔들며 "아휴 괜히 걱정했네!"하고 웃으시는 엄마.


이날 깨달았다.

이제 내가 엄마의 보호자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보호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보호해야 할 것들이 있기에 건강해야 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이었다.


나 하나만 보호하면 됐던 시간들은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이제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부디 그 시간이 너무 짧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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