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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호 Nov 22. 2021

엄마는 괜찮아

손주보다 내 딸

아기를 출산하기로 한 날, 양수가 터져 신랑 손을 잡고 둘이서 현관문을 나선 지 2주 하고 4일이 지나 아이를 안고 셋이 되어 집으로 온 날이었다.

낯설기만 한 신생아와 함께하는 첫날밤.

갓난아기들은 특히 밤에 많이 울기 때문에 신랑과 둘이서 당황할까봐 친정엄마가 걱정이 되셨는지 함께 있어주시기로 했다.

사실 엄마도 갓난아기를 안아본지가 30년이 지났고 소중한 손주다 보니 긴장한 듯 보였다.

신랑은 거실에서 자고 아기를 케어해야 하는 엄마와 내가 아기를 데리고 안방에서 잠을 잤다.

아기침대에서 따로 재우긴 했지만 2시간마다 한 번씩 모유수유를 해야 하니 사실상 잠을 잘 수 없었다. 말이 2시간 마다지. 먹이고 트림시키고 재우면 1시간이 훌쩍 지나 1시간 뒤에 또 맘마를 먹이는 것이다. 그러니 도통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일어나면 엄마도 일어나셨다. 아기가 울면 잠결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아기를 안은 체 수유를 하고 트림시키기 위해 등을 토닥이며 방 안을 돌아다니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셨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만 트림시키고 재워. 괜찮아. 눕혀"

시원하게 트림을 하지 않아 불안했지만 엄마도 나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시는 것이 마음에 걸려 조심스레 아기를 침대에 눕혔다. 침대에 누워서도 아기침대를 바짝 붙여 불편해하지 않는지 틈 사이로 지켜보며 손을 넣어 토닥였다. 그러다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쿨럭.

아기 입에서 왈칵하고 모유가 쏟아져 나왔다.

난 놀라서 벌떡 일어났고 엄마도 놀라 따라 일어나셨다. 아기를 번쩍 들어 안으며 나도 모르게

" 거봐. 아직 안된다니까!! 엄마가 눕히라고 해서! 아휴 진짜 " 라고 내뱉어버렸다.

엄마는 당황해하며 아기를 이리 주라며 안아주겠다고 하셨다. 정신이 없는 순간 퀭한 눈으로 잠도 못 주무시고 당황해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고 나야 이 아이의 엄마니까 괜찮은데 나 때문에 할머니이자 내 엄마까지 고생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 내가 할게. 엄마는 자 "

 하지만 엄마는 주무시지 않고 계속 내 옆을 서성이며 안절부절 하셨다. 그런 엄마가 신경 쓰여 다시 한번 말했다.

"그냥 자라니까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러자 엄마는 "애가 토도 할 수 있고 그런거지. 너는 너무 유난스러워! 나 그냥 집에 갈 거야!" 하며 집을 나가셨다.

그 시각 새벽 2시. 밖은 비가 오고 있었다.

아기를 안아 흔들며 엄마를 붙잡으러 나갈 수 없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몇 분 동안 엄마가 나간 안방 문을 바라보았다.

쏴아- 비 오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거실에서 자고 있던 신랑을 깨웠다. "여보, 엄마가 나가셨어. 우산도 안 갖고 가셨어. 좀 나가봐" 신랑은 무슨 일이냐며 바로 엄마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집으로 가시고 없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여러 번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 않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집이야.]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더니 실수로 누르셨는지 모르겠지만 통화연결에 성공했다.

" 미안해 엄마. 그냥 가면 어떻게 해 "

" 너는! 너무 유난스러워! 잠도 한숨 안 자고 애만 그렇게 끼고 있으면서 어떻게 될까봐 아주! "

엄마의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울고 계시다는 것을.

"얘가 잘 소화를 못 시켜서 오래 트림을 시켜줘야 해.. 엄마한테 짜증내서 미안해"

"도대체 안아주겠다고 해도 못 안게 하고! 잠도 얼마 못 자서 눈도 못 뜨면서 아기만 그렇게 안고 있으면 넌 언제 자려고 그래!!"

울음을 쏟아내며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도 울음이 터졌다.

"내가 해야 되는 일이니까 난 괜찮아.. 엄마도 다 이렇게 나 키웠잖아"

순간 그날 밤 안방에서의 우리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기를 보고 있었던 것처럼 엄마는 나를 보고 계셨다. 엄마 눈에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난 괜찮아"

엄마가 흐느끼며 말씀하셨다.

"괜찮긴. 귀한 내 딸이 잠도 못 자고 고생하는 거 보니까 엄마는 너무 속상해"

겪어봤기에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알아 그 과정을 똑같이 겪고 있는 내가 그저 안쓰러웠을 엄마.

내 아이를 걱정하듯 엄마도 나를 걱정하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눈물의 통화가 끝나고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손자도 이쁘고 소중하지만 엄마는 딸이 더 소중해. 엄마도 미안해" 이어 서툰 맞춤법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남기셨다.

"엄마는 딸이 힘들어하는 것보다 엄마가 힘든 게 더 좋아. 엄마도 너희들 키워봤잖아. 신생아는 더 힘드니까 엄마가 딸 잠 못 자는 게 더 보기 힘들어. 차라리 내가 힘든 게 낫지. 내일은 도우미 선생님이 아기 목욕시킬 때 엄마가 아기 씻겨보려고"

다 커서 엄마가 된 딸을 돕겠다고 환갑이 넘은 나이에 신생아 씻기는 방법을 배우시겠다는 엄마의 말에  터져버린 눈물은 한동안 멈출 줄 몰랐다.


엄마가 되고 엄마의 한마디 한마디는 내 눈시울을 붉히는 울음 버튼이 되었다.


아이를 갖기 전 엄마 마음을 알 것 같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말했다. 넌 내 마음을 모를 거라고. 그때는 엄마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고 보니 그것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엄마만이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여자가 아닌 엄마라는 제3의 존재 그 자체였다. 난 이제 1% 정도를 알게 되었다.

앞으로 엄마가 엄마로서 보낸 시간만큼 내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가 된다는 건 엄마의 시간이 멈춰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엄마의 시간이 멈추고 나중에 내 시간도 멈춰 엄마와 내가 만나는 날이 오면 그때 엄마를 꼭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를 이해하겠노라고 엄마로서 살아온 날들을 이야기하며 엄마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고 품에 안겨 말할 것이다.

우리에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또 엄마의 딸로 태어나 더 일찍 건강 챙겨드릴 것이고 더 많은 시간 함께할 것이며 나의 엄마가 되어 살았던 모든 시간이 행복하도록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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