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 도서관 사서 자원 봉사 (1)
시립 도서관 서가 정리 자원 봉사 _ 첫 출근
/ 어린이 자료실의 회전율이 가장 빠르다. 어린이들은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이것저것 골라 읽은 후 대출하지 않고 두고 간다. 일하는 동안에는 앞치마를 입고 있으니 누구든에게든 문의를 받곤 한다. 처음에는 말을 건네받는 대상이 내가 맞는지 파악하느라 잠시 머뭇거린다. 자매로 보이는 어린이 한 명이 내게 물었다.
"흔한 남매 4권 어디 있어요?"
청구 번호로 책의 위치를 찾는 법을 알고 있는 친구였다. 하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 책이 없었다. '대출 중'이라는 표시를 확인하는 것까지는 아직 익숙지 않은가 보다. 9권은 대출 가능한 것을 확인하고 그 책을 찾아주기로 했다. 그마저도 서가에 없었다. 잠시 살펴보니 도서관에 온 다른 어린이가 꺼내 읽고 있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 <흔한 남매>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구나.
/ 9시가 되면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시민들이 있다. 따로 열람실 구색을 갖추고 있지 않은 도서관인데, 점심이 되기 전 대부분의 자리가 꽉 찬다. 어르신들이 3할, 중년층이 3할, 꽤 어려 보이는 청년들이 3할, 엄마와 함께 온 어린이가 있다. 경계 없이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냉난방과 온수 냉수까지 제공되는 쾌적하고 다정한 도서관이 시민의 사랑방 역할에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자체만으로 나는 부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그곳의 공공의 기물과 장서가 다 내 것인 양 느껴지는 덕이다. 이것이 다 네 것이다 포옹해 주는 도서관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걸어들어갔으면 좋겠다.
/ 매일 27종의 종이 신문이 도서관으로 배달된다. 아는 신문도 있고 모르는 신문은 더 많았다. 신문의 낱장이 흩어지지 않게 중심부를 스테이플러로 3번 찍은 후, 일간지 서가에 전면이 보이도록 꽂는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해야하는 업무 중 하나이다. 27종의 신문을 철하면서 22년 12월 27일 신문들의 1면을 전부 보았다. 어제 북한의 무인 정찰기가 한반도 상공을 내내 체류했다. 그 종이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나는 처음 보는 도서관의 장면이었다.
/ 도서관을 체류하는 관찰자가 경험하는 재미는 단연 다른 이용객들의 독서 이록을 힐끗이는 것이다. 순위와 취향에 속박되지 않고 평등하게 꽂혀있는 공공 서가에서 대출자의 사적인 이야기에 코가 꿰어 집이라는 더 사적인 공간으로 초대받아 가는 책들의 운명. 이들이 돌아올 때도 공동의 운명으로 한 무더기 재빠르게 뱉어내진다. 오픈 직후 분주한 업무를 끝내고나면 요령껏 휴식의 시간이 주어진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펼쳐보았고 또 무게를 감당하며 빌려갔던 그 책의 목록들을 본래의 평등한 자리로 꽂아 놓으러 가는 길에 살피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구나.'
'이 책을 빌려간 사람은 이런 책도 함께 엮어 읽는구나.'
/ 반납된 책 속에서 아니 에르노를 건져올렸다. 조선의 도자기에 관한 책과 영어 원서로 된 소설 몇 권, 그리고 <얼어붙은 여자>가 동일한 인물에게 간택을 받았었다. 조합이 흥미로웠다. 마침 아니 에르노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한창 핫할 때이기도 하고 서양 소설 과외 자료를 준비하면서 프랑스 문학에 조금 기웃거렸더니 아니 에르노가 마구 땡겼다. 반납된 책을 서가가 아닌 내 자리로 가지고 왔다. 그렇게 <얼어붙은 여자>를 쟁여놓고 엉뚱하게 <박완서의 말>을 읽었다. 읽다보니 그걸 읽으나 이걸 읽으나 나에게 남을 잔상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고작 4시간 일하는 서가 정리 봉사자가 하루 안에 <박완서의 말>을 완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출을 하지도 않겠다. 꽂혀있는 위치를 기억 속에 메모했다. 내일 나에게 또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면 가름끈으로 표시해 둔 뒷부분부터 읽어나가면 된다. 누군가 대출해간다면? 읽을 책은 얼마든지 많다. 나는 도서관에서 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