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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정우 Apr 08. 2016

수원화성

정조의 효심이 만든 계획도시



밤이 내린다.

낮의 번잡함과 소음은 어둠에 묻히고, 성곽을 따라 하나 둘 조명이 켜진다.

봄 바람은 어둑한 성벽 안과 밖을 넘나드는데, 어느새 시간은 이백여 년을

거슬러 오고 간다. 이곳은 정조의 시대, 실학이 만들어낸 조선의 성곽,

수원화성이다.




방화수류정의 봄 밤  



화성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과정


  조선시대에도 신도시가 있었을까? 지금처럼 크고 화려한 규모는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계획도시가 있었으니 바로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은 정조 18년(1794)에 착공되어 2년 6개월 만에 완공되었으며 우리나라 성곽문화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정조(1752~1800)는 시와 글씨와 그림에 두루 능했던 조선의 22대 왕이다. 굳이 말하자면 문화대왕이란 호칭을 붙여도 무리가 없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임금이다. 1759년 여덟 살의 어린나이로 세손에 책봉되었으며, 1775년 영조가 죽자 25세의 나이에 왕으로 등극했다. 왕위에 오른 정조는 조선의 사회, 경제, 문화의 대부흥기를 이끌어가게 된다.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같은 실학자들을 당파에 구애 없이 고루 등용하였고 끊임없이 혁신정치를 펼쳐나갔다. 그러나 정조에게 뼈저린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이었다. 그는 양주 배봉산에 묻혀있던 아버지의 묘를 지금의 화성군 화산으로 옮기게 되고 매년 봄과 가을, 참배를 다녔다. 그러다 아예 도읍을 옮겨버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외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정치를 펼쳐 보고자하는 그의 이상이 담겨져 있었다.


 수원화성은 영의정 채제공의 총지휘 아래, 정약용이 공사과정을 계획, 감독하였다. 그 이전까지의 토목기술 수준을 고려한다면, 이렇게 수려하고 견고한 성곽을 2년 반이란 짧은 기간에 완성한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실학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응용이었다.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는 40근의 힘으로 무려 625배나 되는 2만5000근이나 되는 돌을 들어 올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당시로선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수원성의 축조에는 당대의 모든 과학과 기술이 집약되었다. 동서양의 축성술에 대한 학술적 조사와 연구가 사전에 치밀하게 이루어졌으며 주요 방어시설을 모두 벽돌을 만들어 쌓아올렸을 정도로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성곽이 단지 전시를 대비한 건축이라는 인식을 뛰어넘어 민생을 위한 의도까지 포함된, 말 그대로의 계획도시였던 셈이다. 무엇보다도 민폐가 없는 인화와, 장인 솜씨를 발휘해 아름다운 벽돌 성이자 조선시대 성곽의 꽃이라 불리는 수원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수원성의 북문인 장안문
수원성의 물길이 드나드는 화홍문, 수원성의 서문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정조의 꼼꼼함과 실학이 만들어낸 최첨단의 성(城)


 수원화성은  4대문인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과 동장대, 서장대, 공심돈, 봉돈, 포루 등  다양한 시설들이 갖추어져있다. 이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성들은 대부분 임진왜란을 거치며 파괴되었으니 새로 축조되는 수원성은 훨씬 더 튼튼하고 전술적으로도 완벽함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수원성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건물과 장치들이 들어서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공심돈이다. 공심돈은 현재 창룡문 쪽의 동북공심돈과 화서문의 서북공심돈 2개가 남아있는데, 성벽을 따라 들어선 여러 시설물 중에서도 가장 큰 화력을 집중적으로 쏟아낼 수 있게 설계되었다. 봉돈은 5개의 굴뚝을 쌓아 유사시에는 봉수대 역할을 하는 시설물이다. 다른 봉수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 역시 성벽으로 다가오는 적들을 공격할 수 있게 총구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팔달산 정상부의 서장대에 오르면 사방으로 트인 수원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전시에는 지휘부가 상주하게 되는 곳이며 맑은 날에는 백리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 뒤에 자리한 노서대에는 쇠뇌를 설치하여 먼거리의 적들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성곽을 거닐며 만나게 되는 다양한 건축물과 기구들. 각각의 용도와 짜임새에 관해 추리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성곽의 전체 둘레는 5.7km로 찬찬히 걸어서 도는 시간은 대략 2시간 ~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보통 장안문이나 화성행궁에서 출발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가장 많은 노선이 지나가는 이유이다. 자가용을 가져올 경우엔 한산한 창룡문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야간의 수원화성을 돌아보는 것도 적극 추천한다. 성곽전체와 조형물에는 세계문화유산답게 훌륭한 조명시설이 설치되어있다. 성 외곽의 어지러운 간판이나 건물들이 어둠 속으로 묻히고 나면 오롯이 돋보이는 역사유적의 흥취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서장대와 노서대,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
북문인 장안문, 봉수대 역할을 하던 봉돈,  동쪽문인 창룡문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수원성에 자리한 별궁, 화성행궁


 정조는 매해 봄과 가을 두차례 수원화성을 찾았다. 그때마다 머물던 곳이 화성행궁이다. 행궁은 원래 왕이 지방을 행차하거나 전시에 전란을 피해 머물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별궁이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일이 잦았던 정조를 위해 수원성에 행궁이 만들어진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여느 별궁이나 행궁에 비해 규모가 꽤 컸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완성된 행궁은 무려 570여 칸이었다. 정무를 볼 수 있는 봉수당을 비롯해 침소인 낙남헌, 왕비가 머물던 복내당, 서리청, 집사청 등 요소요소에 정궁 못지않은 전각들이 들어섰다. 이것은 일반적인 별궁의 의미보다는 장차 이곳으로 천도를 계획했었던 정조의 뜻으로 부터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이곳에서는 왕가의 잔치가 열리기도 했고, 과거시험도 치뤄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화성행궁은 일제시대 때 병원, 관공서, 민가가 들어서며 변질되거나 헐렸다. 일제에 의한 조선왕조 말살정책의 일환일 것이다. 현재의 행궁은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새로이 복원된 것으로 482칸 규모이다. 정문인 신풍루 앞 광장에서 무예24기 시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기록문화의 또다른 유산 - 화성성역의궤


 수원 화성의 축조과정은 화성성역의궤 안에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수원화성의 기획과 시공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항들이 총망라되어있다. 이 위궤는 조선왕조가 편찬한 책들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한 기록문서이다. 화성축조에 있어서 임금의 지휘방침은 서두르지 말 것, 기초를 튼튼히 할 것, 사치스런 치장을 하지 말 것, 일을 합리적이고 능률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할 것, 첨단 과학기술을 총동원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정조의 인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매우 치밀하고 합리적이며 엄정했던 반면에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성을 쌓기 전, 수로를 정비하고 도로를 개설할 때 도로변의 농가들을 수용했는데, 의궤에는 농가들의 주인이름, 위치, 수용가격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공사에 참여한 전문 장인들의 명단과 노임, 출신지와 소속을 기록했고 노역에 참여한 백성들의 이름도 기재했다. 축성에 필요한 자재들은 백성의 것을 징발하지 않고 모두 정확한 값을 쳐서 사들였다. 백성들의 노임도 지급되었는데 기술숙련도와 노동의 강도, 노동시간에 따라 정확하고도 차등 있는 노임을 지급했다. 공사가 진행 중일 때 현장에 내려진 임금의 지시는 백성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혹심한 더위에 성 쌓는 현장에서 공사를 감독하는 사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어찌 잠이 편안하겠느냐. 척서단(더위 먹은 데 먹는 알약) 4천 알을 보내니 한 알이나 반 알씩 정화수에 타서 먹이라. 병을 치료하는 방편에 각별히 유의하고 더위를 씻을 수 있는 것을 넉넉히 마련해서 한사람의 기술자나 일꾼이라도 더위 먹는 일이 없도록 하라.”


수원화성박물관에 전시된 화성성역의궤
수원화성박물관에는 수원성 축성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원화성 여행 Tip


개략적인답사일정

일일코스

장안문 - 화서문 - 서장대 - 화성행궁 - 수원화성박물관 - 팔달문 - 창룡문 - 연무대 - 방화수류정 - 장안문

반나절코스

장안문 - 화서문 - 서장대- 팔달문 - 창룡문 - 연무대- 방화수류정 - 장안문


- 수원화성을 돌아볼때 야경을 꼭 포함할 것을 추천한다. 낮과는 또다른 수원성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일일코스는 화성행궁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행사, 화성박물관, 팔달시장, 통닭골목 등 수원성과 그 주변의 무궁무진한 볼거리, 먹거리 등을 함께 돌아보기 좋다. 반나절 코스는 오로지 수원성곽을 돌아보는 일정으로 진행되며,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오후시간 출발하는 것이 좋다.


수원성 및 화성행궁의 행사

장용영 수위의식/ 3~11월 매주 일요일 오후2시 - 화성행궁 신풍루 앞

무예 24기 시연/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00 - 화성행궁 신풍루 앞

토요상설공연/ 3~11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 화성행궁 신풍루 앞

화성행궁 주말체험/ 3~11월 매주 일요일 및 공휴일 오전10시~ 오후 5시 - 화성행궁 중앙문 앞

국궁체험/ 매일 상시(우천시 제외) - 연무대 매표소 앞

화성열차 운행/ 매일 오전10시~ 오후5시/ 팔달산-화서문-장안문-화홍문- 연무대 운행


수원화성박물관/ 매월 첫 주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9시~ 오후 6시

- 수원화성, 화성행궁, 수원화성박물관 등은 각각의 관람료가 별도로 있다. 개별적으로 구매하는 것보다는 통합관람권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수원박물관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통합관람권/어른 3,5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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