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강에 꽃이 피네
볕과 바람이 온화해지기 시작하는 춘삼월, 광양만에 상륙한 봄기운이 섬진강을 따라 내륙으로 흘러든다. 바다로 가는 강과 내륙으로 오는 봄이 만나 꽃들은 피어오르고, 곰실거리는 향과 볕 속에서 사람은 황어 떼처럼 설렌다. 섬진강은 봄의 강이다.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인 팔공산(해발1151m)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진안, 임실, 곡성, 구례를 지나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가르며 광양 앞바다 갈사만으로 빠져나간다. 강의 전체길이는 212.3km로 우리나라의 강 중에서 아홉 번째로 긴 규모다. 이처럼 여러 지역을 통과하는 강이지만, ‘섬진강의 여정’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동포구 팔십리 길’ 이다. 이런 연유가 붙은 까닭은 강이 하동 땅에 이르러서야 강폭이 넓어지고 비로소 강다운 위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강이 크다는 것은 곧, 그만큼 많은 혜택을 강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 전 이 강에는 큰 배들이 드나들었고 하동 장은 조선의 10대 장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또한 풍부한 수량으로 들이 풍성했으니, 섬진강가의 대표적인 농토인 악양 땅 평사리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무대가 되기도 했다. 섬진강 하구에는 곱고 질 좋은 모래밭이 넓어 백제시대에는 다사강(多沙江)이라 불렸고 사천(沙川)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의 강 이름인 섬진이 된 것은 두꺼비의 전설로부터 비롯되었다.
「 고려말엽 우왕 때(1385년경)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다. 광양만과 섬진강에도 왜구들이 자주 출몰했는데 한번은 왜구들이 하동 쪽에서 강을 건너려 하였다. 그 때 진상면 섬거에 살던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몰려들어 진을 치고 한꺼번에 우는 통에 왜구들이 놀라 도망쳤다 한다. 결국 두꺼비 소리 덕에 마을들은 무사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강 이름에 두꺼비 섬(蟾)자를 넣어 섬진강이 되었다.」
섬진강에 3월이 오면 강가의 마을들은 일제히 꽃잔치가 벌어진다. 섬진강의 봄꽃 중 서막을 여는 것은 산수유다. 산수유나무는 해발 200~500m의 분지나 산비탈, 땅에 물기가 많고 볕이 잘 들며 일교차가 심한 곳에서 잘 자라는 수종이다. 구례군 산동면은 이러한 자연조건을 두루 갖춘 곳으로, 우리나라 산수유 열매 생산량의 67%를 차지한다. 그중 백두대간이 지나는 만복대(1433m) 아래 자리한 상위마을은 산동면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산수유마을이다. 3월 중순, 상위마을은 노란 물감이 흩뿌려진 듯 산수유 꽃으로 온통 넘실거린다. 마을 담벼락과 천변, 논과 밭, 비탈 곳곳이 온통 샛노랗다. 바야흐로 무채색의 겨울로부터 유채색의 봄으로 넘어가는 찬란한 문턱인 셈이다. 이때에 맞춰 구례의 산수유마을들은 축제가 펼쳐진다. 산수유가 정점으로 치닫을 무렵 섬진강 남녘, 광양 다압마을에는 매화가 만개한다. 산수유와 매화가 피는 시기가 큰 차이가 없어서 두 마을에 축제가 열릴 때면 섬진강 자락은 그야말로 꽃 반 사람 반이다. 섬진강 꽃잔치의 정점은 화개벚꽃축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른바 십리벚꽃길은 벚나무가 터널처럼 이어지는 구간인데, 벚꽃이 만개하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축제기간에는 밀려드는 상춘객들로 섬진강변이 온통 주차장으로 변한다. 축제기간을 살짝 비켜나거나 평일 이른 아침이 그나마 여유롭다.
이른 아침 섬진강을 찾았다면, 재첩국으로 한기와 허기를 달래는 것이 섬진강 여정의 기본 코스다. 재첩국에는 그윽한 섬진강 풍경과 물맛이 다 담겨있다. 음식은 전라도라지만, 된장을 풀어넣는 구례식 재첩국보단 담백한 하동 재첩국을 나는 더 선호한다. 짭쪼름한 재첩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올때, 마음이 참 평안해 진다.
꽃이 다 필 즈음이면 섬진강에는 은어와 황어 떼가 올라온다. 황어는 본래 잉어목 잉어과의 담수어종인데 잉어과 물고기 중 유일하게 바다에서 산다. 황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오로지 산란기인 3~4월뿐이다. 은어는 청어목 은어과의 물고기다. 황어와 마찬가지로 강을 거슬러와 산란을 한다. 9~12월 사이 산란을 하고, 부화된 치어들은 바다의 연안으로 나가 생활하다가 3~4월에 다시 강으로 돌아온다. 치어들은 늦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하천의 자갈밭에서 성장한다. 꽃과 사람과 물고기가 노니는 3월의 섬진강은 찬란한 꽃봄이다.
평사리는 섬진강을 껴안은 드넓은 평야지대로 지리산 형제봉의 휘호아래 자리하고 있다. 땅이 워낙 기름진 탓에 예로부터 만석지기 부자들이 많았던 곳이다. 한편으론 이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기도 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도 없이 싸웠고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고소산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빨치산의 식량보급투쟁 장소로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기도 했으니 기름진 옥토가 꼭 부유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닌 모양이다. 현재 평사리에는 박경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최참판댁이 복원되어 하동의 또 다른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구례의 아흔 아홉 칸 양반가옥 운조루는 1776년, 조선시대의 무관인 류이주라는 사람이 7년에 걸쳐 지은 고택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지리산 형제봉에서 천상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금환락지의 형국으로, 명당 중 명당이라고 한다. 지금도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아직 이 집에서 재상 같은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꾸준히 벼슬길에 오르는데다 재산도 축나지 않고 대를 이을수록 불어났다고 하니,꼭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만이 복은 아닌 듯싶다. 섬진강 자락의 수많은 환란 속에서도 운조루가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운조루 안채에 들어서면 알 수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문간 한켠에 큰 뒤주와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적힌 쌀독이 놓여있는데, 보릿고개 때 이 뒤주에 쌀을 담아놓으면 배고픈 마을 사람들이 언제든 와서 퍼갈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이집의 주인인 류씨 가문이 전쟁과 환란 속에서도 지탱되어온 이유는 어쩌면 풍수지리보다도 이러한 박애정신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
- 섬진강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천년고찰 답사다. 구례 화엄사, 연곡사, 천은사, 하동의 쌍계사, 칠불암 등이 지리산에 몸을 기대고 있다. 산너머의 남원 실상사, 백장암, 함양 법계사, 곡성의 태안사, 도림사까지 문화유적을 지닌 천년고찰이 즐비해 문화유산답사에 관심이 있다면 그야말로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지리산의 고찰과 문화유산들은 다음에 별도로 소개하기로 한다.
- 구례 산동면에는 지리산 온천이 있다. 산수유 마을인 상위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니 들려서 여독을 풀어보는 것도 좋겠다.
- 천은사를 지나 성삼재에 오르면 노고단이 지척이다. 주차장에서 걸어서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가량 걸린다.
- 하동 평사리 뒷산에는 고소산성이 있다. 오르면 평사리 무딤이들과 섬진강의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구례 산수유 축제 / http://sansuyu.gurye.go.kr/sanflower/
광양 매화 축제 / http://www.gwangyang.go.kr/gymaehwa/
화개 벚꽃 축제 /
http://tour.hadong.go.kr/program/tour/tourfestival/outTourFestival.asp?cat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