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베를린 : 베를린 오리엔테이션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힘들어진 2022년에
자유로이 다니던 시절이 그리워 2019년 가을 베를린 여행기를 올려봅니다.
2019/10/09
오전 9시 반이나 되어 느지막이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 상쾌한 유럽의 공기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다시 잠을 청했던 까닭이다.
암막 블라인더를 올리니 화려한 컬러의 단풍나무가 눈앞에 펼쳐졌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정겹고..
아.. 내가 유럽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샤워를 하고 짐 정리를 하고 밀린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오전 11시다. 배가 고팠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큰 도로로 나가니 괜찮아 보이는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들어가 보니 80년 전통의 3대째 내려오는 가게였다. 오래된 가족사진을 보니 신뢰가 갔기에 이곳에서 베를린의 첫 식사를 하기로 했다.
뭘 주문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파니니와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자리를 잡으니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문을 위해 길게 줄을 설 정도였다.
동양인 중년 남자가 혼자 브런치를 먹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는지 힐끔힐끔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내가 숙소로 정한 Theodor-Heuss-Platz 역 (서베를린) 인근엔 동양인이 없었다. 조카를 만나기 전까진 단 한 명도 못 볼 정도였다.
낯선 곳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 된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나만의 고립된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 내가 해외여행을 가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라고 한다면 외로워 미치겠지만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로부터 벗어나 가끔 혼자가 되는 순간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일 것이다.
파니니의 맛은.. 그냥 그랬다. 이후로 독일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이 드는 생각은 독일 빵 딱딱하고 먹기 힘들다였다. 한데 신기한 점은 질리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독일의 빵 자체가 독일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처럼 화려하고 낭만적이지도, 런던처럼 멋들어지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편하고 정이 간다고 할까. 의외로 커피가 매우 맛있었다. 아마도 내가 독일에서 마셔본 대부분의 커피가 산미가 적고 쓴맛이 강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럴 것이다.
베를린의 지역별 특색에 대해 덧붙이자면 서쪽은 관광지라고 할만한 곳도 별로 없고 주거지 위주이기 때문에 조용하고 아늑해서 좋았다. 동서로 나뉘었던 과거 역사로 인해 당연한 것이겠지만 서쪽 지역엔 동쪽에 비해 부유하고 조용하고 번잡하지 않은 느낌의 동네들이 많다. 반면 생동감은 많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핫한 베를린은 동베를린인 셈이다. 서베를린은 전형적인 서유럽의 느낌이다.
식사를 마치고 베를린에 살고 있는 조카를 만나기 전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국처럼 편의점이 널려있는 것이 아니기에 편의시설이 좋은 호텔에 묵을 것이 아니라면 마트의 영업시간을 체크해두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집 근처에 마트가 두 곳 있었다. ALDI와 REWE가 있었는데 조카의 말에 따르면 REWE의 식재료 퀄리티가 더 좋다고 했다.
ALDI에 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치즈의 경우는 한국 대비 1/10 정도 가격인 것 같고 대부분 50~70% 정도의 가격이었다. 식재료와 생활용품의 가격을 보는 순간 다른 거 다 떠나서 독일 살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구 사재기를 하고 싶었지만 조카의 조언이 생각나 REWE로 가서 다음날 조식 거리와 물, 맥주 등을 샀다. 저가 맥주의 경우 300원 정도 하니까 물보다 쌌다. 물보다 싼, 그것도 맛있는 맥주라니.. 행복했다.
조카를 만나 베를린 오리엔테이션 겸 미테(중심) 지역에 가보기로 했다.
독일은 S bhan과 U bhan이 있다. 전자가 속도가 빠르고 대부분 지상으로 다닌다. 후자는 민간업체가 운영하고 지하로 주로 다닌다.
S bhan을 타고 시내로 진입했다. 베를린 중심부의 느낌은 역시나 동독 또는 동유럽의 느낌이다. 심플하고 실용적이고 멋을 안 부렸다. 너무 멋을 안 부려서 멋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비슷한 높이의 차분한 색상의 건물들이 죽 늘어서 있다. 아주 가끔 베를린 돔과 같은 오래된 건물들이 보일 뿐이다.
조카는 나를 Augustiner 아우구스티너로 안내했다.
1328년이라는 창립연도에서 굉장한 포스가 느껴졌다.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학세는 다 팔려서 못 먹고 비슷한 양이 적은 돼지고기를 시켰다. 보통 독일 음식들이 심하게 짠데 여긴 간도 딱 좋고 육질도 좋은 게 정말 맛있었다. 맥주 메뉴는 바이에른 특유의 분류법으로 적혀있어 헷갈렸는데 상위에 있는 두 가지는 hell과 edelstoff 였다. 둘 다 라거 계열인데 맥즙의 농도에 따라 다른 듯했다. 난 가장 무난한 hell로 시작했다.
호기심 강한 조카는 밑에 있는 radler를 주문했다. radler는 자전거인데 왜 맥주 이름이..? 라며 주문을 했는데 알고 보니 맥주와 레모네이드가 5:5 정도로 혼합된 칵테일 맥주였다. 맥주를 마시고 자전거를 타도 될 정도로 순해서 라들러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맥주의 맛은 괜찮은 편이지만 살짝 단 맛이 돌아서 내 입맛에 딱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걸어서 미테 지역을 돌아봤다. 베를린 돔을 거쳐 훔볼트 대학을 거쳐 Hackescher Markt로 향했다. 보통 여행을 가면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빨리빨리 돌아다니는데 한 달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느긋했다. 하나하나 깊이 있게 들여다볼 생각을 하니 흐뭇했다. 일생에 없을 그 여유로움이란..
하케셔 마르크트엔 좋아 보이는 음식점이 많이 보였다.
그중 멋스러운 아일리쉬 펍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이름부터가 Kilkenny Irish Pub이었다.
독일에서 마시는 영국 맥주라니 맛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기로 했다.
킬케니는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기네스를 주문해보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독일은 라거였다. 손님이 바글바글해서 기대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 맛이 없었다. 아마도 희소성에 의해 독일인들이 이리 좋아하나 보다 싶었다. 독일인은 왠지 자국 맥주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타국 맥주(영국의 에일 등)에 배타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손님의 많은 대부분의 펍은 아이리쉬나 최근 유행하는 미국의 마이크로 브랜드를 취급하는 에일 펍 등이었다. 펍의 주된 소비층은 MZ 세대일 것이고 그 어느 나라나 청년들은 트렌디한 것을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옮겨 제대로 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을 찾아 헤매는데 가는 곳마다 자리가 없었다. 시끄럽고 사람 많고..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조용해 보이는 이태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거기에도 딱 한자리 남아있었다. 한국의 이태리 식당에 비하면 맛도 별로고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초파리가 마구 날아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손님이 줄을 서고 있었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망했을 식당이었다.
독일에선 음식 장사할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자영업이 포화상태라 뭐를 해도 전쟁인데.. 한국은 청결은 기본이고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고 인테리어도 끝내줘야 살아남는데... 한국 사람들 대단하기도 하고 참 힘들게 산다는 생각에 괜스레 억울했다.
그런 고로 베를린 첫날의 기억을 종합해보자면.. "이민 와서 살아보고 싶다."였다.
물론 첫날이 그랬다는 것이다. 첫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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