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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필복감독 Apr 03. 2020

시계 매니아의 독일 시계 성지 답사기 2

글라슈테의 매뉴팩쳐 둘러보기

글라슈테로 향하는 차창 밖  풍경은 이전의 고생이 기억 안 날 만큼 예뻤다.

7 정거장을 거쳐서 가는데 정차하는 마을마다 동화 속의 마을 같아서 내리고 싶을 정도였다. 1시간에 1대씩 오니 언젠가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런 식으로 둘러봐도 괜찮을 듯싶었다. 아침 일찍 나와서 마을 하나에 두어 시간 보내다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식으로.


풍경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어느덧 글라슈테다. 독일어 안내원의 멘트로 글라슈테라는 단어를 듣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랑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위스 바젤이나 뉘샤텔보다 더 가보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지명일 뿐인데 보는 순간 감동이 밀려온다.


글라슈테의 10월


글라슈테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방문 시기가 10월 단풍시즌이라 더욱 아름다운 듯했다. 이런 곳에서 시계를 만드니 예술로 나올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로 옆에 붙어있는 노모스 사무실.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직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글라슈테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노모스다. 역사의 일부로 보일 정도로 바로 붙어있다. 플랫폼 눈높이에서 노모스 사무실이 투명하게 보인다. 첫인상이 강렬했다. 후발 주자이지만 내가 글라슈테의 얼굴이야!!라고 외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반대쪽 명당자리에 모리츠 그로스만 공방이 보였다. 시작부터 압도적인 느낌이다. 


선로를 사이에 두고 노모스와 모리츠 그로스만이 마주 보고 있다.


역 밖으로 나오니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모두 일할 시간이니 그럴 만했다.

샌드위치와 토마토를 싸오길 다행이었다. 변변한 식당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계박물관 앞 거리가 메인 스트리트인 듯 보였다.


낯선 곳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돌아가는 교통편 확인이다.

구글맵을 켜는데 데이터가 먹통이다.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서 그런가 보다. 


이런.. LTE를 믿지 말자고 다짐해 놓고 또 믿었구나. 


한 시간에 한 번 기차가 오는데 몇 시에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차역에 시간표가 없다니… 

도대체 이 놈의 실수는 언제쯤 끝이 날까. 아이폰의 등장 이후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는 빈도가 높아지다 보니 한국 같은 IT 강국에서 벗어나면 바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실수가 반복되다 보니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부족해진다. 시계 박물관에 가면 와이파이가 있겠지라는 낙천적인 생각으로 일단 움직였다.


랑에 오피스. 좌측 끝에 문이 보인다.



가는 길에 좌측으로 랑에 건물이 보였다.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반가움에 문을 두들겨볼까 하다가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마을이 작다 보니 역에서 시계박물관까지는 걸어서 3분 이내의 거리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우습고 역에서 나와 길 건너면 랑에 사무실이고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시계 박물관이 정면에 보인다.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7유로에 표를 구입하고 3유로 내고 오디오 가이드 헤드셋 빌리고 안내책자까지 사고 물었다. 와이파이 되냐고. 안된단다. 이런..

에라 모르겠다. 대충의 스케줄은 알고 있으니 일단 둘러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감독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계획 짜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생활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오면 본성이 드러난다. '그래. 난 원래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것을 즐겼지.' 


만들어진 내가 아닌 타고난 나 자신을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는 것 또한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박물관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시대별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었다. 글라슈테의 시계산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느껴지는 그런 박물관이었다. 대충 알고 있었던 것들을 디테일하게 보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감격스러웠다. 역시 박물관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봐야 가슴이 뛰는 법.


무브먼트 플레이트가 1:1에서 2/3로, 3/4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는데 왜 이렇게 감동적인 것인지. 

아.. 3/4 플레이트가 1890년 즈음에 이미 완성이 되었구나. 그때부터 스완넥 레귤레이터였구나. 엄청난 페를라쥐와 엥글라쥐를 보라. 누가 요즘의 랑에가 화려한 것이라고 했나. 1800년대 랑에의 세공은 더 죽이는구나. 금은 또 왜 저렇게 번쩍이는 것이냐. 등등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1시간만 보고 마을을 둘러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2시간이 지나갔다. 3시였다.

드레스덴-베를린이 5시 10분 버스. 그러면 4:40까지는 도착해야 안정권이다. 가장 늦은 기차를 타도 4시 차를 타야 했다. 1시간 남았다.


오디오 헤드셋을 반납하는데 직원이 아저씨에서 할머니로 바뀌었다. 아까 물어볼걸 후회하며 몇 시에 기차가 출발하는지 물어보니 역시나 할머니 영어를 못하신다. 그래도 뭐 의사소통은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 몇 시 출발이냐고 정성을 다해 물어봤더니 배차 시간표를 주신다. 허무했다.


기차 시간표가 역에 없고 박물관에 있을 줄이야... 문화충격이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곳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했던 시간표


글라슈테는 스스로를 관광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박물관에 온 사람만 관광객일 거야. 뭐 이런 건가.

아무튼 시간표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3:45 기차가 있었다. 타이밍은 딱 좋았다. 드레스덴 역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베를린행 버스를 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역 쪽으로 향했다.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언제 다시 오겠나 싶어 아쉬운 마음에 랑에의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인터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세요?"

"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누구 만나기로 하셨어요? 약속하셨나요?"

"아니요. 혹시 안에 둘러볼 수 있을까 해서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기다리니 영어를 잘하는 친절한 여성이 내려왔다.

"여긴 오피스다. 공방은 길 저편에 있지만 그곳도 견학은 힘들다. 언포츄니틀리 미안하다. 들어올 수 없다. 마케팅 팀을 통해 오는 투어를 경우가 있다. 미안하다."

언포츄니틀리 와 미안하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직원 앞에서 내가 미안했다.

"아니다. 괜찮다. 혹시나 해서 두들겨 봤다."

괜한 부탁을 한 거 같은 미안함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후 이 분은 독일에서 가장 친절했던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다. 친절함의 마에스트로였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글라슈테 오리지널 건물.
개방적인 실내. 


하나라도 더 보고자 글라슈테 오리지널 건물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랑에에 비해 개방적이었다.

마치 자동차 전시장처럼 프런트에 직원 둘이 앉아있고 둘러볼 수 있도록 시계가 전시되어있다. 외관과 실내 모두 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이다.


건물도 멋스러운 랑에 공방


발걸음을 옮겨 랑에 공방 쪽으로 향했다. 

랑에 공방의 건물은 총 3동이었다. 가운데에 길을 사이에 두고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역시 건물도 멋지구나. 


유리창 너머서 라도 내부를 보고 싶었던 염원이 담긴 사진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어느덧 떠날 시간이 되었다. 1시간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6시간 정도 여유를 가지고 오면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만 해도 제대로 보려면 4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퇴근 시간의 기차역


플랫폼에 올라가니 안 보이던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3:45. 퇴근시간인가 보다.


언젠가 다시 한번...이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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