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05)-6월 6일(금)
2008-06-08 오후 1:55:41
1. 결국 밤에 자지 못하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가지고 온 책인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읽었다. 나는 폴 오스터 같은 작가를 매우 좋아한다.
2. 역시 시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아내와 함께 새벽 5시 30분쯤 1층 로비에 있는 호텔 식당에 갔다.
우리가 묵고 있는 이런 중급 호텔은, self-service인 부페가 있다. 요구르트, 우유, 씨리얼, 쥬스, 커피, 토스트, 와플, 베이글, 바나나 등 과일, 베이컨, 햄, 삶은 달걀 등이 식대에 차려져 있고, 각자 취향에 맞게 먹으면 된다.
3. skype.com이라는 site가 있다. 여기에 가입하면 가입자끼리 헤드폰 셋트로 전 세계의 어디에서라도 무료로 무제한 서로 통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서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므로 불편하고,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도 이 정도 기능은 다 있다.
skype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휴대폰 단말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 가게 되는 경우, 미국에서 쓰고 있는 아무 휴대폰 단말기(나의 경우는 석휘나 석윤이의 휴대폰)를 이용해서, 그 local 요금만 내고, skype 프로그램에서 지명해 놓은 6명과 무제한 통화할 수 있다.
이런 귀중한 정보를 현주씨로부터 듣고 한국에서부터 그 프로그램을 이용하려고 하였으나 뭐가 잘 되지 않았다.
오늘 새벽에도 시도했으나 역시 잘 되지 않았다.
낮에 아내, 석윤이와 쇼핑 센터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내 머릿속은 계속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골몰하였다.
생각 끝에, 우리나라에서 skype.com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그것의 한국 사이트로 전환되게 되어 있는데 한국 사이트에서 한국말로 그 프로그램을 번역하면서 생긴 문제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쇼핑 센터에서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석윤이의 컴퓨터로 영문 사이트로 들어간 후, 다시 시도해보았다.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속히 후련하였다.
내게 주어진 여섯명은 사무실 직원, 박변, 그리고 4명의 의뢰인이다. 그리고 그 여섯명은 수시로 바꿀 수 있다. 이제 비싼 국제전화요금 물어가면서 의뢰인과 통화할 일은 없게 되었다.
4. 오늘은 석휘 학교에서 주최하는 학부모들 초청 저녁식사에 참석하고, 밤에 열리는 졸업생 장기자랑(THE SENIOR TALENT SHOW)을 보는 일정이다.
오후 5시쯤 석휘 학교에 갔다. 이제 내일 졸업식 외에는 다시 이곳을 올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4년 전 석휘를 이곳에 처음 데리고 왔을 때가 생각난다. 석휘는 그 때 우리나라 나이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내는 석휘를 혼자 이곳에 놓아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
9학년(Freshman)으로 입학한 석휘는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고, 기숙사에서 우연히 만난 12학년(Senior) 한국인 학생은 얼마나 어른스러워 보였는지 모른다. 아내는, 그 친구를 보자 석휘를 잘 부탁한다며 자세를 낮추었다.
근데 이제 석휘는 Senior가 되었고 학교의 최고 선배가 되었다. 4년 전에는 소년의 티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내년이면 군대에서 신체검사통지를 받을 정도로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번에 졸업하는 12학년은 모두 120명 정도가 된다. 그 중 한국학생은 모두 5명이다. 남자 3명, 여자 2명인데, 모두 단지 동급생 이상으로 친하다. 부모님들도 모두 좋으시다. 더욱 다행스러운 점은 5명 모두가 괜찮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 번 졸업식에 5명 부모들이 모두 오셨다.
저녁 식사 전에 학교 정원에서 삼삼오오 만나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석휘 기숙사 방짝인 Caith의 부모님인 Mckee씨 부부도 만났다. 미국의 보딩스쿨은 툭하면 long weekend라고 하여서 주말을 끼고 4, 5일씩 노는 날이 많다. 이 때 학생들은 모두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 때마다 석휘는 Mckee 씨 집에 가서 지냈고, Mckee씨 부부는 그럴 수 없이 석휘를 잘 보살펴 주었다.
석휘는 Mckee씨가 나와 인생관이 매우 비슷하다고 말하였다. 나는 Mckee씨에게 Caith를 이 번 여름에 꼭 한국에 보내달라고 하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5. 저녁식사는 학교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상안이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상안이 아버지는 소설가 황석영씨를 많이 닮았다고 느껴져 그렇게 말을 하였더니 사실은 그보다는 이경규씨를 더 많이 닮았다고 하여 우리 모두 웃었다. 아내는 아까부터 그렇게 생각을 하였는데 실례 될까봐 말을 못하였다고 하였다.
부모들이 각각의 라운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Junior(11학년)들이 웨이터 복장 차림으로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써빙을 하였다. 작년에 같이 축구를 한 용대도 그런 웨이터 중 하나다. 웨이터 복장을 하여도 용대는 귀티가 나고 잘 생겼다.
6. 저녁 식사 후, 학교 예배당에서 기도 모임이 있었다. 우리 부부와 석윤이는 참석하지 않고, 바로 오늘 공연이 열리는 학교 극장으로 향하였다.
공연 시작 시간까지 한시간도 넘게 남아서 아무도 없는 빈 극장 객석에서 우리 세명은 동시에 의자에 앉아서 졸았다.
공연 예정시간은 8시로 알고 있는데 8시가 다 되어 가도 객석은 3분의 1 밖에 차지 않았다. 나는 자기 아이가 오늘 출연하지 않는 부모들은 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다른 한국 아이 부모들은 한 집 빼놓고 다 먼저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공연 예정시간을 잘못 알았었던 모양이다. 8시 30분쯤 되자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 왔고, 결국은 빈 자리를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서서 공연을 관람할 수 밖에 없었다.
7. 9시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는 석휘 학교에 올 때마다 예전에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 비교하여 흥미있는 차이를 발견한다.
첫째, 선생님과 아이들의 자리가 따로 구별되어 있지 않다. 아무 자리에서 서로 섞여 앉는다.
둘째, 모임이 시작될 때 선생님들이 마이크를 잡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그런 절차가 없다. 시작 순간이 되면 아이들의 조용해질 때까지 강단에 그냥 조용히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러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절차가 진행된다.
이 번에도 그랬다. 공연시작 20분전부터 웬 뚱뚱한 초로의 신사가 무대 한쪽 구석에서 부동자세로 조용히 서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그 신사는 무대 가운데로 걸어나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사람이 많아서 시끄럽던 관객석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10분 정도 그 신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뭐라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 신사는 석휘 학교의 영어선생님이었다. 석휘 말에 의하면 그 선생님은 gay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은 학생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선생님 중 하나라고 하였다.(이 글을 보는 분들 혹시 gay가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에 불쾌해하지 마시길.)
이어서 남학생 둘, 여학생 둘이 나왔다. 오늘의 사회자들이었다. 이들은, 그 때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다양한 말과 동작, 아이디어로 관객들을 웃음 도가니로 만들었다.
첫 시작은,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과 면바지를 말쑥하게 입고 나온 남학생의 경쾌한 라틴댄스였다.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이들의 경쾌한 라틴 댄스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이어서 등장한 친구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나온 흑인 학생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작곡한 곡이란다. 불행히도 노래 솜씨는 시원찮았다. 역시 장기자랑 수준이라는 것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구나하는 가벼운 실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 친구의 연주가 끝나자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 날 공연 때 나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더 받았다. 아내의 말대로 관객의 태도는 매우 성숙되고 훌륭하였다. 출연자가 실수를 하거나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 그 박수 소리와 환호는 잘하는 출연자들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세번째로 등장한 학생은 깨끗한 드레스를 차려 입고, 반면에 맨발 차림으로 나온 청순하게 보이는 아가씨였다. 역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기타로 연주하면서 불렀다. 눈을 감고 들으니까 '죤 바에즈'의 목소리를 듣는 듯 하였다.
이후에도 맨발 차림으로 나오는 여학생들이 많았는데 석휘의 그 다음 날의 설명에 의하면 자기 학교들은 유난히 히피가 많고, 그 여학생들도 그 히피들 중 하나라고 하였다.
그 경우에 히피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옆에 있던 석윤이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자기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만 가지는 사람'
다음 차례는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백인 여학생이었는데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클래식은 이런 장기자랑 대회 때 진부하고 지루하다.
다음은 키가 1미터 55센티미터나 될까. 비정상적으로 키가 작은 동양 학생이 무대로 나왔다.
태국에서 왔단다. 나름대로 열창을 하는데 많이 부끄러워 하였다. 분위기가 여러가지로 특이하였다.
이 학생은 이번에 하버드에 입학하였다고 하였다. 태국 정부는 해마다 전국에서 50명의 학생들을 뽑아서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미국의 사립학교에 보낸단다.
이 학생은 1년 전에 왔다. 아직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수학의 천재라고 한다. 처음 기숙사에 와서 하루종일 야동에 빠져 있어서 아이들이 황당해했단다. 태국에서는 야동을 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다음은 전기기타를 치는 남학생과 드럼을 치는 여학생 듀엣이었다. 둘이 5년 동안 사귀는 관계라고 하는데 리허설 때 마치 부부처럼 서로에게 말을 하여서 학생들이 재미있어 했단다.
그 다음은 여학생 두사람이 나와서 클래식한 분위기의 노래를 듀엣으로 불렀다.
지금까지 나온 학생들의 노래 솜씨나 연주 수준은, 아주 가끔 실수가 있었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 모르게 할 정도로 대단하였고, 또한 재미있었다. 더구나 다음 차례를 소개하면서 사회자들이 벌이는 갖가지 꽁트는 흥미를 더 해주었다.
다음에 석휘가 나올 차례라고 하자 석윤이는 "이렇게 모두 잘 하는데 형이 잘 할 수 있겠어?"하고 걱정을 하였다. 석윤이는 노래방에서 석휘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석휘는 흑인 학생과 서로 파트너가 되어서, R&B의 대가인 Usher와 R. Kelly가 듀엣으로 부른 'Same Girl'을 부른다고 하였다.
석휘는 요즘 유행한다는 챙이 동그란 모자를 쓰고 무대에 등장하였다.
'Same Girl'은 친구들끼리 각자 최근에 만난 죽여주는 여자친구에 관하여 우연히 이야기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 여자가 같은 여자인 것을 알게 되면서 서로 놀라고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내용으로서 마치 래퍼들이 배틀하듯이 서로 한마디씩 주고 받으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석휘와 그 흑인 학생은 마치 뮤지컬처럼 - 웃고, 화를 내고, 비웃고, 무시하고, 절망하고 - 연기하고, 힙합 춤을 추면서 불렀다. 그 직전에 비교적 템포가 느린 노래들을 듣던 관객들은, 특히 학생들은 이 노래에 열광하였다. 동작 하나 하나에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불어 댔다.
석윤이는 '제법 잘 하는데'하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플륫 듀엣 연주가 있었다.
서양 여자 아이들은 드레스가 참 잘 어울린다. 드레스 자체가 서양인 체형에 어울리게 만든 스타일이라서 그렇겠지만 그냥 평범한 드레스 같은데도 하얀 피부에 다른 색깔이나 무늬가 섞이지 않은, 심플한 스타일의 빨간색, 파란색등, 원색의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게 앉아 플류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서양 유화에 나오는 여신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다음 순서는, 죤 바에즈의 노래를 기타 연주에 맞추어 불렀던 여학생이 이 번에는 피아노에 앉아서 반주를 하였고, 순박하게 또는 슬프게 생긴 흑인 남학생이 무대로 나와서 슈렉에 나왔던 '할렐루야'를 불렀다.
그리고, 내가 이날,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남녀 듀엣 공연이 있었다.
여학생은 스페인에서 왔다고 하는데 정말 스페인 귀족 같이 생겼다.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피부는 백옥처럼 빛났다. 웃을 때는 그 모습이 너무도 우아하였다.
그 파트너 남학생은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이었는데 잘 생겼다. 귀족 아가씨를 흠모하면서 호위하는 무사같은 풍모이다.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을 좋아하였던 이정재처럼.
이 두사람이 몸을 밀착시키면서 관능적인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감각적인 스페인 노래이다. 참으로 그 모습이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이어서 모녀가 나와서 엄마는 만돌린을 연주하고, 딸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다음 순서는 깨끗하게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그러나, 모두 맨발차림들인, 백인 여학생 세사람의 기타 3중주였다.
이제 두 팀이 남았다.
끝에서 두 번째로 등장한 남녀 학생들은 정말 좋은 목소리를 가진 훌륭한 가수들이었다. 지금 바로 프로 무대에 진출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끝으로 등장한 팀은, 무대의 장막이 올라가면서 쨘하고 나타났는데, 헤드뱅잉을 하는 헤비메탈 그룹이었다. 기괴한 복장으로 엄청나게 강렬한 사운드를 연주하였다.
분위기가 급고조되어 흥분한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이어서, 모든 학생들이 무대로 뛰어 올라가서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모두 어울려 춤을 추고, 노래를 같이 불렀는데, 갑자기 연기가 나면서 무대 바닥이 열리더니, 꽃을 든 남학생이 땅 속으로부터 올라왔다. 그리고는 이 헤드뱅인 그룹들은 하나하나씩 그 남학생을 따라 지하로 사라져 갔다.
2시간 동안의 공연이 끝났다.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참 재미있었다. 중간중간에 가사를 까먹거나, 박자를 놓친 경우도 있었으나 모두들 훌륭한 재주를 가졌다. 진행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되었었다.
공연이 끝나자 갑자기 무대 위에서 대형 스크린이 내려 왔다.
이어서 대형 프로젝트 빔으로 슬라이드 쇼가 시작되었다. 지난 4년간의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한 장씩 넘겨 졌다.
아이들은 한장씩 사진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고,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배경음악은 처음에는 Kiss 가 부른 것 같은 헤비메탈 사운드였다가 나중에는 Jack Jonhson의 노래 같은 서정적인 노래로 바뀌면서 아이들을 추억에 잠기게 하였다.
그 슬라이드 사진들은 너무 재미있었다. 단언컨대 평범한 포즈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많은 아이들은, 특히 여학생들은 걱정될 정도로 비만도 많았고, 평범 내지 평범에도 못 미치는 외모들이었으나 아무도 그 점을 부끄러워 하거나 움추려 드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런 아이들의 무리에 장애인이 슬쩍 섞여 있어도, 그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거나 불편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모두 완전히 망가진 모습들이었다. 우리나라 여학생들 같으면 절대로 그런 표정을 남기지 않았을 것 같은 기괴한 표정들.
남학생은 여자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는가 하면,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엎어져서 정신없이 자는 모습도 있었고, 어떤 친구는 "I Love Hot Mom' (Love는 붉은 하트 표시였다.)이라고 쓰여진 티셧츠를 입고 나타나서 모두를 눈물나게 웃겼다.
항상 활짝 웃고 있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꼈다. 자유스럽고, 편안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서로에게 듬뿍 애정을 주는... 서로가 금방 껴안아 줄 것 같은 분위기...
슬라이드 쇼가 끝나자 마자 이제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짧은 영화가 상영되었다. 서로 껴안고 다니는 모습들, 장난을 치는 모습들. 수영장에서 거꾸로 다이빙하는 모습들. 복도나 교실 바닥 같은 아무 곳에서나 쭈그려 앉아서, 또는 심지어는 엎드려서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는 모습들.
나도 가슴이 뭉클하였는데 이제 학교를 떠나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극장에 불이 켜지고, 우리는 자리를 일어섰다. 극장 바깥 로비에는 사람들이 아쉬워하면서 좀처럼 헤어질 줄 몰랐고, 많은 학부모들은 석휘를 보고, "You, Same Girl, Guy, Right?"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주고, 포옹하고, 엄지 손가락을 올려주었다.
석휘는 기숙사로 돌아 가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자기 전에 맥주 한 잔 딱 했으면 오늘의 이 행복했던 기분을 알맞게 정리할 수 있을텐데, 그럴 기회가 없었다.
남자만 있는 학교에 다니는 석윤이는, '우리 학교에는 여학생이 없어서 저런 공연을 할 수 없을 거란 말이야.'하고 아쉬워 하였다.
내게는 어떤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즐거운 공연이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고 대단한 나무가 많아도, 직접 자신이 키운 작은 꽃 하나에 더 애정과 관심이 가는 것 아니겠어요? 하는 박병*의 말이 생각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