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개츠비의 키워드로 계속 언급되는 '상류사회'는 작품 속에서 과연 어떤 의미일까?
개츠비는 헤어진 연인 데이지를 잊지 못해 5년이 흐른 뒤 그녀의 집이 건너다 보이는 대저택으로 이사를 온다. 개츠비가 만 건너편 데이지의 집 앞 초록빛 등대를 바라보며 손을 뻗는 장면은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데이지와 사귈 당시만 해도 가난뱅이 군인이었던 개츠비는 5년 만에 젊은 거부가 되어 뉴욕에 입성한다. 그리고 데이지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과 맞붙는다.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개츠비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게 된다. 하지만 개츠비의 데이지는 그렇게 단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려면 먼저 그의 전사를 제대로 파고들어야 한다.
개츠비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는 자기 출신과 부모와 성분을 죽도록 혐오했다. 개츠비도 본명이 아니다. 실패한 부모 밑에서는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한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던 개츠비는 열 일곱 되던 해에 백만장자인 댄 코디의 요트를 우연히 만나면서 정말로 인생이 바뀌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댄 코디가 아니라 개츠비라는 인간 본인이다. 그의 인생에 댄 코디가 출현함으로써 꿈이 현실화되기 시작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 전부터 개츠비는 원대한 이상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부터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벗어나 현란한 세계로 가겠다는 몽상을 매일 밤 잠에 빠져 들 때까지 하고 또 했다. 그는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이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될 거라는 확신에 빠져 살았다. 자기암시의 결정판이다.
"그의 부모는 기력 없는, 실패한 농사꾼이었다. 그의 상상 속에 그런 부모를 위한 자리는 마련된 적이 없었다. 롱아일랜드 웨스트에그의 제이 개츠비는 그의 이상화된 자기형상화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런 말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말 그대로 그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따라서 그는 '아버지의 사업' - 거창하면서도 대중적이고 또한 그럴싸해 보이는 아름다움에 봉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 에 종사해야만 했다." - <위대한 개츠비> 中
실제로 댄 코디는 죽으면서 개츠비에게 2만 5천 달러라는 유산을 남겼지만 어떤 법적인 이유에선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개츠비에게 남은 건 댄 코디로부터 받은 남다른 교육뿐이었다. 개츠비는 댄 코디 밑에서 5년 간 백만장자의 모든 걸 배우면서 자기계발로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갔다. 10대 소년의 수첩에는 오전 6시에 기상해서 밤에 잠들 때까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공부와 운동, 스피치 연습, 독서, 저축, 건강 등에 관한 계획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자기계발을 필수로 여기는 현대인이 봐도 입을 쩍 벌릴 정도로 완벽하고 치밀하면서 목표가 뚜렷한 계획표였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당연히 상류사회 진입이었다.
개츠비는 군인 시절 그 지역 부잣집 딸인 데이지를 만나면서 이 꿈을 더욱 구체적으로 키운다. 겉으로는 데이지에 대한 사랑이지만 개츠비는 데이지가 사는 집에 먼저 반한다.
"그녀는 그가 처음 만난 '상류층' 여자였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멋진 집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부대의 막사가 그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않는 것처럼 데이지 역시 자기 집에 대해 무심했다. 그러나 개츠비에게는 집 전체가 무르익은 신비로 가득했다. 2층 침실은 다른 어떤 침실보다도 아름답고 근사하며, 복도를 따라 유쾌하고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고, 철이 지나 라벤더 속에 버려진 로맨스 대신, 새로 출시된 번쩍거리는 자동차나 꽃들이 시드는 법 없는 무도회처럼 신선하고 향기로운 로맨스가 펼쳐질 것 같았다." - <위대한 개츠비> 中
가진 거라곤 쥐뿔도 없이 상류사회를 향한 열망만 가득한 개츠비는 데이지를 얻고픈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그녀를 '폴로 경주마를 보유할 정도로' 거부인 톰 뷰캐넌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 개츠비는 5년 간 사라졌다가 신흥 갑부가 되어 다시 데이지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개츠비의 과거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요즘 말로 '갑툭튀' 갑부인 개츠비가 도대체 뭘로 돈을 벌었는가가 뉴요커들의 최대의 관심사인 것이다. 개츠비가 살던 시대는 금주령이 내려진 시절이었는데 개츠비가 밀주 사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심지어 갱단과 손을 잡고 더 지저분한 일도 한다고 쑥덕들거렸다. 그러나 그가 무슨 일로 돈을 벌었든 확인된 바는 없고 사람들은 진실은 외면한 채 부자인 개츠비의 저택으로 밤마다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다. 돈이 곧 인맥인 것은 어느 시대나 통용되는 진리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은 개츠비를 인정하지 않았다. 개츠비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저택도 우스워 보였고, 개츠비의 화려한 인맥도 그에게는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유명한 분들, 많이 와 계십니다."
톰의 거만한 눈초리가 사람들 사이를 어지럽게 방황하고 있었다.
"아직 구경은 많이 못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실은 여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네,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톰 뷰캐넌은 개츠비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를 대놓고 무시한다.
자기를 마치 처음 만난다는 듯이 구는 톰에게 개츠비가 더는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전에 뵌 적이 있습니다만, 뷰캐넌 씨?"
"아, 예." 톰이 말했다. 퉁명스럽지만 그래도 예의를 갖추어 말하고는 있었는데, 실은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개츠비를 무시하는 톰의 태도는 점입가경이다.
"엄청난 디너파티인데, 그 친구는 거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데이지를 만났다는 건지 궁금하네. 하늘에 맹세코, 내가 구식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여자들은 싸돌아다니는 꼴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가 않아. 별 미친놈들을 다 만나고 다닌다니까."
톰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이해하려면 톰의 배경을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