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나눌 작품은 천재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입니다. 1950년대에 쓰여진 작품인데 2022년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놀라운 연애 소설입니다. 현대 드라마와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삼각관계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남녀의 심리 지도를 촘촘하게 세밀하게 그려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는 세 남녀가 등장합니다. 서른아홉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폴, 스물다섯의 수습 변호사 시몽, 그리고 트럭 운송업에 종사하는 40대의 로제가 그들입니다.
폴과 로제는 6년째 사귀고 있는 오래된 연인이에요. 로제는 바람둥이고, 폴은 그런 로제의 바람끼를 알면서도 익숙함을 떨쳐내지 못해 모른 체하죠. 하지만 매우 괴로워해요. 그러던 어느 날, 폴은 돈 많은 부인의 집 인테리어를 의뢰받고 그 집을 방문해요. 그곳에서 그녀의 아들인 시몽과 만나게 됩니다. 시몽은 첫 눈에 폴에게 반해요. 자꾸만 다른 여자에게 가는 로제 때문에 고독과 배신감에 몸부림치던 폴은 잘생긴 열네살 연하남의 대시를 거부하면서도 점점 흔들립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폴의 심리를 따라가는 소설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질문의 의미>
이 질문은 시몽이 폴에게 음악회 티켓을 보내면서 함께 가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는 쪽지에 적은 말입니다. 쪽지라니 참 낭만적이네요. 그런데 이 질문을 받은 폴은 '내가 작곡가 브람스의 음악을 좋아하던가'라는 단편적인 생각에 머물지 않았어요. 작품 속 구절을 가져와 볼게요.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 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p60-
폴은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고 음반을 꺼내 듣다가 음악에 집중을 못하고 언제 끝났는지도 몰라요.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이 애써 피하려고 했던 질문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걸 느껴요. 다른 여자를 만나는 로제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자신의 비정상적인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렸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죠. 사강은 그래서 제목의 문장부호를 물음표(?)가 아니라 반드시 말줄임표(...)로 넣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한 차원 깊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바뀌는 거죠. 이렇듯 사강은 문장부호 하나만으로 일반 연애 소설을 고전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