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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 셜리 Apr 24. 2021

꽃이 보내는 위로

미치도록 아름다운

요즘...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삶의 낙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들 그냥 살듯이 나도 그냥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출근은 싫었다.

생각해보니 아마도 코로나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코로나가 우리 삶을 꽁꽁 묶어놓은 지 어느덧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TV에서는 매번 이번 주말이 최대 고비라며 집에 머물러 달라, 외부 활동을 자제해 달라.... 나처럼 걱정이 많고 소심한 사람들은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매번 시키는 대로 사람도 잘 안 만나고, 사람 많은 곳은 자제하며, 흔한 맥줏집 한 번을 안 갔다. 그렇게 모든 것들을 코로나 이후로 미루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방역수칙을 잘 지킨 나만 바보가 된 듯해 억울하기도 했다.

친한 사람들도 자주 못 만나고, 여행도 못 가고, 야구장도 못 가고, 좋아하는 꽃놀이도 사람들을 피해 다니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는 게 다 시들해졌다. 재미가 없었다. 꽃을 봐도 예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식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번 각원사를 마지막으로 올해 벚꽃은 진짜 진짜 끝이라고, 개심사까지는 정~말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데는 개심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새벽에 출발하지 않으면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게 제일 컸다. 그리고 실제로 몇 년 전에는 개심사를 코앞에 두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나온 적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꽃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몇 시간씩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나 요즘처럼 모든 게 시들할 땐 그런 수고로움을 이겨낼 만큼의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젯밤 계속 개심사 겹벚꽃이 떠올랐다. 문수사의 분홍 왕벚꽃터널이 눈에 밟혔다. 에이~! 그래도 못 간다~~~ 그 새벽에 갔다가 또 못 들어가면 어쩔건데! 몰라~~~ 안 가! 아니 못 가!~

그렇게 안 간다. 못 간다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6시 귀신같이 잠이 깼다. 하.... 안 간댔잖아~~~! 그래 놓고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건데...  ㅠㅠ 일찍 일어났으니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잖아. 어쩔 수 없네. 그래! 가자~! 가야지 뭐~!

어쩜 어젯밤에 나의 무의식은 이미 가겠다고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의식이 새벽 6시에 잠을 깨우고 날 일으켰나 보다. 그런가 보다...

결심이 서자마자 바로 씻고, 국에 밥을 후루룩 말아먹고 또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지난번 새벽에 갈 땐 안개가 너무 많이 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운전을 했었는데, 다행히 안개도 없고 날씨도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적당히 좋았다.

대전-당진 도속도로를 달려 면천 IC로 빠졌다. 서산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팝콘 같은 왕벚꽃이 보인다. 개심사가 가까워지자 초록초록 목초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만 보면 좀 과장을 보태서 스위스 어디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서산 한우목장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여러 번 와도 소가 나와있는 건 거의 보질 못했다. 어쨌든 눈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다행히 여기까지는 차가 안 막힌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8시 30분쯤 개심사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차들이 줄을 서 있다. 돌아 나오는 차들이 있는 걸 보니 주차장이 만차인가 보다. 마음은 불안하지만 일단 들어가서 자리가 나길 기다려보기로 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 빈자리가 없다. 어쩌지?... 하는 그 순간 운명처럼 내 앞에서 차가 한 대 쏘~옥 빠져나간다. 와우~ 감사합니다... ㅠㅠ

절까지 가는 길을 막아놔서 걸어서 올라갔다. 온통 초록 아니면 분홍색이다. 분홍색 겹벚꽃이 여기저기 팡팡 피어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더 예뻤다. 절정을 맞은 부케 다발 같은 꽃송이들이 눈이 부셨다. 정말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진짜 찐으로 미쳤다~~~! 몽글몽글 피어난 꽃송이들을 올려다보느라 고개가 아플 지경이었다. 진짜 봐도 봐도 예쁘고 또 예쁘다. 맞아~! 바로 이 느낌이지! 꽃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그대로였다. 꽃으로 완전한 힐링~ 지금 이 순간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온전히 꽃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보고 또 보고... 감탄하고 또 감탄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두고 오기가 너무너무 아까워서 자꾸자꾸 뒤돌아 보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문수사로 향했다. 문수사로 들어가는 길도 역시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전에 없던 임시주차장이 생겼으나 역시나 만차. 일단 원래 주차장 자리까지 들어갔다. 만차다. 어쩌지? 하는 순간 또 거짓말처럼 자리가 났다. 이런 행운은 뭐지?~~~

문수사는 올라가는 길이 분홍색 겹벚꽃으로 터널을 이루는데 절정을 막 지난 느낌이었다. 그래도 꽃이 만들어주는 터널을 걷는 느낌은 말도 못 하게 행복하다.

새벽 6시에 잠을 깨운 것도,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게 해 준 것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주차 자리를 만들어 준 것도 왠지 꽃들이 날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울했던 날 위로라도 해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난 그렇게 믿으련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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