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
때는 일제강점기 시대, 식민자가 된 나라의 명맥을 자르기 위해 침략국은 갖은 만행을 했었다.
제일 먼저 이름을 바꾸게 했으며, 소급의 교육과정만 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나라의 땅을 파헤치고 깊게 깊게 수많은 쇠말뚝을 박은 것을
일제는 제일 먼저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서울을 점령했다.
사방으로 현무, 청룡, 백호, 주작의 풍수에 맞춰 서울을 뒤엎었다.
현무 위치에 있는 북악산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워서 경복궁을 눌러버렸고,
주작의 위치인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했다.
청룡과 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과 낙산에는 그 정상에 쇠말뚝을 박았다
이것은 일각에서 들리는 일제의 풍수침략이야기다.
영화 <파묘>의 해석을 두고 일제 강점기의 쇠말뚝 이야기가 화제이다.
친일파 집안의 자손들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이 되어
조상의 묘가 화근임을 알게 되어 이장을 두고 한 영화 <파묘>
MZ세대의 무당 화림과 봉근 그리고 풍수사 상덕, 장의사 영근은
모두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같다.
파묘를 결정하던 순간 인간 여자의 얼굴을 연상하는 검은 머리털을 가진 기괴한 뱀과 음산한 기운은
곧 험한 것이 나올 듯 불안하다.
샤머니즘의 영화 <파묘>는 곧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한 쇠말뚝을 상기시킨다.
결국 파묘는 침략자의 갖은 악행에 저항하는 애국투사의 영웅을 오컬트에 실어냈다.
쇠로 만든 말뚝의 이야기는 조선시대로 올라간다.
1797년(정조 21년)
정조는 우의정을 불러 나라에 인재가 없음을 한탄한다.
그러자 되돌아오는 말은 명나라 초기 한 도사가 단천 현덕산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 하여 다섯 개의 쇠말뚝을 박고 떠났다고 말한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 괴담은 퍼졌지만 역사적 근거가 반영이 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천문진 괴담, 지신주 괴담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조상이 죽으면 매장하는 전통이나 땅을 섬기는 농경사회의 미신으로 풍수지리가 적용된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쇠말뚝 이야기는 1990년대 이후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기 위해 제일 먼저 광화문 한복판에 조선 총독부를 지었다.
조선의 왕과 백성이 마주하는 것을 막아서는 것처럼 경복궁의 모든 궁을 가려버렸다.
창경궁도 갖은 동물을 들여와 동물원으로 재개발을 하여 궁의 위력을 떨어뜨렸다.
한반도 산간벽지의 박은 쇠말뚝은 풍수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한국의 정기를 막으려는 일본제국의 악행이라는 괴담이야기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괴담이야기는 1993년 문민정부에 들어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 직후 철거가 된다.
일제강점기의 잔상이었던 조선총독부 철거는 당시 국민 투표 70%가 찬성이었다니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일본에 오른쪽 앞발로 사람을 부르는 시늉을 하는 고양이 마네키 네코가 있다.
상가에 놓여 손님을 부르는 흔한 고양이 장식이 초기 여우였다고 한다.
일본 설화에 보면 여우는 유부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우 우동이라는 기쓰네를 썼지만
일본 정부는 여우를 신성한 존재로 여겨 제작을 금지시켰다.
그래서 손님을 부르는 장식은 마네키 네코가 되었다.
최근 부쩍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졌다.
여우에 홀린 듯 일본을 찾는 한국 사람들
암튼 쇠말뚝 이야기나 여우 이야기 보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다시는 우리나라가 외세에 침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