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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Jun 04. 2024

내 달리기 라이벌


어제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모임에 나갔더니 다들 운동 얘기만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내가 바로 다음날이 되면 뛸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셨다. 며칠 전 백년 만에 나가서 뛴 기록이 애플워치 알림으로 떠서 더욱 확신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뛰어야겠지. 그렇게까지 내게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실망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러닝복을 꺼내서 주섬주섬 입었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 나가기 싫어, 뛰기 싫어, 달리기 싫어를 200번은 중얼거렸던 것 같다. 바깥은 땡볕이었고, 이따금 바람이 쌩쌩 불었다.


오랜만에 런데이를 켰고, 런저씨의 음성을 들으며 살짝살짝 발을 떼기 시작했다. 싫어싫어하면서도 꾸역꾸역 몸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내가 바라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과거의 나를 시기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매일매일 달리기를 하는 삶을 살 수 있었는지를 따져 묻고 싶었으며, 급기야 재수없어, 짜증 나 라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과거의 자신을 이처럼 부러워하는 건 좋은 일일까. 한때마나 내가 부러움을 살 만큼의 삶을 산 것 같아서 기쁘기는 한데, 역시 짜증난다. 왜 지금은 그때처럼 되지 않을까.


런데이는 30분을 지속주로 달리기 위해 8주차의 훈련을 시켜주는데, 나는 7주차의 1회차 과정을 실행하고 있었다. 최근 쉬지 않고 가장 오래 뛴 기록이 10분이었기 때문이다. 7주차의 1회차 과정은 5분 걷고 10분 뛰고 3분 걷고 10분을 또 뛴 뒤 5분을 마지막으로 걷는다. 첫 10분은 어찌어찌 끝냈는데 두 번째 10분은 절반에서 멈춰야 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뺨도 터져나갈 것 같았다. 아, 진짜. 어떻게 했던 건데! 소리라도 꽥 지르고 싶었다. 또 짜증이 났다. 나는 쉬지 않고 1시간을 뛴 적이 있었다. 전생에서 있었던 일이 아닐까. 차라리 그렇게 믿는 게 속 편할 것 같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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