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 살면 신경 쓸 일이 많다. 가족이니까 신경 안 써도 되지 않느냐고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의아했다. 남이면 신경 안 썼지, 가족이면 어떻게 신경을 안 써? 하고. 물론 나는 남도 가족도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초예민 인간이라 그마저도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저 초예민 인간답게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각할 뿐.
다섯 시 반에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방에서 나가 저녁 식사 준비를 돕는다.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가다가 안방 문 밑에서 빛이 새어 나오면 아버지가 왜 아직도 잠을 못 자고 있는지를 고민한다. 점심때가 지났는데 방에 있는 사람들이 인기척이 없으면 걱정한다. 일정하던 귀가 시간이 달라져도, 새벽에 누군가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도, 샤워하는 물소리가 길어져도, 무언가 쿵쿵 부딪치는 소리가 나도, 센서등이 이유도 없이 켜져도, 누군가 한숨을 쉬어도, 혀 차는 소리를 내도.
뒤꿈치가 장판에 닿았다 떨어지는 소리, 거실 서랍에서 약통을 꺼내는 소리, 영양제를 까 먹는 소리, 냉동실에서 몰래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방으로 서둘러 숨어드는 소리. 온갖 기척들이 나의 집중력을 깨뜨리고 신경을 사로잡는다. 이런 일은 굉장히 피로하다. 나의 만성 피로와 불안증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아까는 양치질을 마치고 물을 뜨러 부엌으로 갔다가 이색적인 장면을 보았다. 요즘 거실은 엄마의 공부방인데, 시험이 2주도 남지 않아서 살금살금 지나다니고 있다. 엄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노트북을 켜고 필기하느라 여념 없었다. 동영상 강의를 듣는 중이라 이어폰을 낀 채였다. 나와 달리 엄마는 집중력이 매우 좋아서, 한번 공부를 시작하면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다. 그렇다고 바로 옆에서 실내 자전거를 타는 사람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가.
정수기의 물을 졸졸졸 따르며 나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거실의 풍경을 두 눈에 담았다. 엄마가 공부를 하고 아빠가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빠는 티비를 보며 자전거를 타는데 티비를 꺼져있다. 아빠에게서 엄마까지는 두 걸음도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을 신기하게 구경하다가 물컵을 들고 방으로 돌아간다. 뒤꿈치를 들고 걸어가다가 두 사람에게서 연장되는 한 점을 스칠 때, 나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