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로 모교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된 걸 알았다. 너무 놀라서 소리까지 지를 뻔했다. 생각도 못해본 일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놀란 건가, 스스로도 이상하여 곰곰 생각을 해봤더니 내 기억 속에 선생님은 너무도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학주도 교감도 안 어울릴 듯한. 물론 고3 올라가면서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이 된 후로는 미처 몰랐던 면을 다른 애들로부터 전해 듣기도 했지만, - 대체로 ‘야자 감독하면 피곤한 타입’에 관한 증언들로, 엄격하고 무섭다고 소문나거나 학교 체제에 친화적인 선생님에 대한 험담이었다. -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던지라 졸업할 때까지도 실감한 적이 없었고, 현재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추억들은 모두 기분 좋은 것들 뿐이어서 더욱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 선생님이, 교장이라니?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서 역대 교장 선생님들을 찾아보았더니, 내가 좋다고 쫓아다녔던 영어 선생님도 이미 그 자리에 앉은 적이 있었다.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 입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쫓아다니면서 혼내던 학년 부장 선생님이 교장이 된 것까지는 봤는데…… 그 사이 세 명의 교장 선생님이 더 있었다니. 새삼 시간의 흐름이 절절하게 끼쳐왔다.
고등학교 2학년은 초중고 교육과정 중 가장 자유로웠던 때로 기억된다. 담당 교사가 교감 선생님인 댄스부라며 학교 행사날 당당히 사복을 입고 돌아다니던 ‘강타시절 - 중학교 3학년. H.O.T. 춤을 췄는데 강타 역할을 했다 - 도 거침없긴 했지만 - 다른 학교 축제에 가서 춤을 추고 출연비 5만 원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그 돈으로 회식을 하라고 하셔서 가정실습실 같은 데서 중국집 요리를 가득 차려 놓고 먹은 적이 있었다. 수업 시간, 부활동 시간, 방과 후 시간 개념 없이 보내던 때였다. 중3이었고, 우리는 고입시험도 있었는데! - 학과 과정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활동을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고2 시절이 확실히 앞섰다. 특별활동 하기 싫다고 미루다가 들어가야 했던 수학연구부에서 탈출하여 갓 신설한 뮤지컬 동아리에 입부할 수 있었고 - 친구의 친구가 만든 동아리였는데, 그 애는 내 친구에게 동아리 개설을 선포하며, 나를 콕 집어서 ‘너도 드는 거야!’ 해서 나는 내가 뮤지컬 부가 되는 것을 알았다 - 열정적인 친구와 친해지는 바람에 - 뮤지컬부를 개설한 걔다 - 영어원어촌극 대회도 나갔으며 - 나는 허준이었는데 사과 먹고 정신을 잃은 백설공주를 살려야 했다 - 하필 내가 있던 반은 교내 합창 대회를 한다고 인근의 대형교회를 연습실로 섭외하는 반장이 이끌고 있었다. - 다른 반들은 방과 후 교실에서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
고1보다는 눈치 볼 게 덜하고 고3보다는 느슨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온갖 일은 다 찾아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 담임으로서 나를 책임져야 했던 이가 바로 ‘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안 된다고 한 적이 없었다. 선생님 연습이요, 저 연습 가요, 영어 대회 나갈 거예요, 강당 다녀올게요.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맡겨둔 돈이라도 찾는 듯 당당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어, 다녀와라, 가라, 연습은 잘 되냐? 잘하고 있냐?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들.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체육대회였는데 승부차기 시합이 있었고, 나는 우리 반 골키퍼였다. 열 명의 선수들이 두 번씩 공을 차서 총 20번의 킥을 날리는데, 우리 반은 2골 이상 먹힌 적이 없었다. 내가 공을 받는 건 잘 못해도 쳐내거나 피하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기가 막혔다. - 후뢰시맨 꿈을 접은 후 피구왕 통키가 되려고 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반대항 피구 시합에서 우리 반을 1등으로 만든다 -
결승전을 앞두고서였나. 대진표를 확인한 상대편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을 찾아왔다. 공교롭게도 그는 내가 1학년 때부터 좋아해서 쫓아다닌 영어선생님이었다.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살살해줘. 알았지?” 하도 무서워서 저승사자로 불리는 그는 저승사자가 지을 수 없는 희귀한 미소를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정말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 왜냐면 나는 그 저승사자 선생님을 정말 많이 좋아했고, 너무 좋아해서 애들이 다 알고 선생님 본인도 다 알 정도여서 학년이 바뀌었다고 마음이 딱 끝나지는 않았다 - 그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스윽 나타나서 말하는 거다. “허허. 우리 반 골키퍼에게 무슨 볼일이시죠? 승부는 냉정한 법입니다.” “아이 이거 망했네.” 선생님들이 운동장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 구최애와 현최애가 나란히 간다 - 나는 문득 깨달았다. “와 나. 영어선생님만 좋아하네??” - 내가 좋아한 첫 선생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다닌 학원에서 만난 영어선생님, 두 번째는 6학년 때 역시나 그 학원에서 만난 영어 선생님, 그리고 나는 스무 살이 되면 영문과에 입학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직 아이들이 편을 가르지 않고 한데 어울려서 노는 아주 짧은 시기. 가장 온화한 그 시간의 절정에 내 생일이 있었다. 당시 선생님은 생일을 맞은 친구들을 축하하기 위해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에게 부탁하여 생일 당사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 옆에 친필로 편지를 쓴 뒤 코팅을 해서 선물로 주었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으니 학년 말까지 지속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흐지부지 되기 전의 특혜를 모조리 받는 생일 수혜자였고, 열여덟 번째 생일에도 축하를 받기 위하여 교탁 앞으로 나가있었다. 반 친구들이 생일 노래를 불러줬던가. 생일축하한다며 박수를 받았던 건 기억이 난다. 그때 잠시 선생님과 나란히 서 있었는데, 반 애들 중 누군가가 “닮았어요!”라고 말했다. “뭐?” “둘이 닮았어요!” 그때 나는 커트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었고, 가끔씩 안경을 착용하던 선생님도 하필 그날 안경을 쓰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선생님이 씩 웃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님은 내 어깨에 팔을 척 두르시더니 “그래! 내 아들이다!” 선포했다. 애들이 와하하하 하며 단체로 웃었다. 이걸 좋아해야 해…? 속마음이 물었지만, 나도 같이 와하하 웃고 있었다. 그날 교실로 들어오던 햇살의 따뜻함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어느 교실의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져볼 수 있는 건, 그 순간을 살아봤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도 오래오래하시고, 늘 잘 지내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