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닫힌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잔하게 Jul 02. 2024

원작자가 되어라!


요즘 부계정 어쩌고 광고 계정만큼 빛의 속도로 차단하는 계정이 생겼다. 일종의 명언모음집 같은 계정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감동적이며, 있어 보이고, 자아 발전에 굉장한 도움을 줄 것 같은 글들을 꾸준히 업로드하는데, 대체로 캡처 이미지이다. 다른 사람이 한 이야기를 캡처하여 자신의 피드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멀리 갈수록 좋다고 생각하는지라, 한때는 그런 이들을 소식을 나르는 부지런한 새처럼 여긴 적도 있었다. 몰랐던 이야기를 그들을 통해 듣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 그들은 반응이 좋은 글들을 자신의 피드로 가져오며 그 글이 받아야 할 반응을 제 것인 양 누리고 있었다. 캡처를 당한 글의 원작자가 불평하는 것을 보고는 그들의 행위가 얼마나 불쾌하고 나쁜 것인지를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글 쓴 장본인이 불쾌해하는데도 꿋꿋하게 그 사람의 글을 캡처하여 자신의 피드에 올리고 좋아요와 댓글을 모으는 이유는 뭔가. 그 글을 향한 반응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착각이라도 하는 건가?


책을 갓 읽기 시작했을 때. 책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밑줄 그은 부분을 타이핑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공개적인 블로그에 올렸다는 것이다. 밑줄 그은 부분이 적지도 않은데 20개 30개 책 속의 문장을 그냥 막 올렸다. 서평단 활동을 바로 시작하였기에 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게 그런 과거가 있었고, 때문에 한 작가가 자신의 소설 대부분을 필사해서 올린 블로거를 향한 쓴소리를 했을 때 덩달아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경험은 이후 북스타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에도 영향을 미쳐서, 나는 책 사진을 올리고 책 속의 문장만 줄줄줄 써 놓은 계정은 맞팔하지 않았다. 사진을 예쁘게 찍었으니 책 홍보에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다. 나도 그 사진에 반해서 책을 찾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을 뿐 그 이상의 교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독서 기록도 있는 거라고, 덕분에 한 권이라도 책이 더 팔려서 작가에게 수익이 돌아가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마음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인용 문장의 개수가 20개 30개씩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딱 하나를 인용한다면 출처는 반드시 표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책 속 문장은 본문에 쓰고, 출처는 댓글에 나눠 써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계정 주인이 쓴 것처럼 보이는 그런 이상한 출처 기재 방식 말고. 아름다운 문장 옆에 그 문장이 사는 집과 창작자를 바로 알아볼 수 있게 써주었으면. 이런 일은 특히 시집의 경우가 심한 것 같은데, 시의 일부만 찍어서 이미지만 덜렁 올리는 일은 대체 언제쯤 사라질는지? 출처만이라도 밝혀달라는 시인들의 호소를 여러 번 보았는데 여전히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책이 어떤 방식으로든 읽혔으면 좋겠다면서도 이렇게 툴툴대는 건 역시 모순적인가? 깐깐해 보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 글이 받아야 할 좋아요와 호감을 엉뚱한 사람이 주인인 척 받고 있는 것이 나는 여전히 보기 힘들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오전에 생긴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느 채널의 에디터가 자신들의 콘텐츠에 내 사진을 써도 되겠냐며 댓글을 달았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친구들이 나온 사진이니까 친구들한테 먼저 허락을 받아야겠다”했다. 그러곤 그 에디터가 운영한다는 계정에 들어가 보았는데 팔로워 수가 만 단위, 십만 단위인 정보성 채널이었다. 피드엔 (에디터가 장담한 대로) “출처가 표기된” 다른 사람들의 사진들이 있었다. 콘텐츠마다 모두 아이디가 다른 사람의 사진들. 그걸 보고 나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천만따리인 나도 열심히 사진 찍고, 셀렉하고, 보정해서 콘텐츠 만드는데. 이렇게나 쉽게 사진을 모은다고? 모은 사진들로 피드를 채운다고? 혹시나 해서 그 계정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이미 한 블로거가 나와 같은 제안을 받고 수락한 후기를 작성하며 ”그렇게라도 자신의 사진이 쓰인다니……” 하는 글을 썼다. 아이고야……. 그간 내가 잘 찍지도 못하는 사진을 찍고 귀찮아 죽겠다면서도 꾸역꾸역 콘텐츠를 만들어내던 시간이 아른거려서 거절한다는 답댓글조차 쓰지 못했다. 그때 잃은 의욕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온통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