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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잔하게 May 11. 2024

불온한 기억


미움받은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된 것일수록 선명하게 기억된다. 내가 괴로웠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집안 어른들은 깜짝 놀라곤 했다. 별걸 다 기억한다며 내가 문제인 듯 분위기를 몰아갔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내가 그들을 용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할 때마다 처음 겪는 일처럼 서럽고 아픈 기억. 그런 건 기억이 아니라 늙지 않는 현재니까. 저물지 않는 과거니까. 그들에게도 그런 게 있을지 궁금하다. 없다면 내가 되고 싶다. 나를 고통스럽게 한 자들에게 죽는 날까지 잊히지 않는 고통이 되고 싶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옥행을 벗어날 수 없는 건 오로지 그 때문이다.


내가 미움받은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일곱 살. 집안 어른들의 진술을 토대로 재구성된 기억까지 포함하면 분만실에서부터 당일 퇴원, 두 살, 세 살, 촘촘하게 덧대어진다. 나는 다만 태어났다. 그런데 왜 놀림당하고, 코 푼 휴지처럼 은근슬쩍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겨져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달려가 안기면 안아주는 척 밀어내고 자리를 떠나던 이들의 명단을 갖고 싶다. 어릴 땐 다 한두 번씩 겪는 일이라며 허허껄껄 덮으려는 자들 때문에 명단은 훼손되어 왔다. 그들의 이름은 내게 도착하기 전에 파쇄되었다. 거세당했다. 죽은 척 묻혔다.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범인이 대놓고 발을 빼는 걸 보면서도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이미 잊혔거나, 잊힌 셈 치기로 합의가 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뒤늦은 호의를 베풀며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 들었을까? 머리가 컸으니 더는 안 된다고, 대단한 이치를 깨달은 것처럼 갑자기 상냥해진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런데 내 머리는 태어날 때부터 컸다. 내 어머니가 진지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애가 나온 줄 알았는데 머리만 나왔더라고. 목에서 걸린 애를 빼느라고 난리를 쳐야 했다고. 억지로 잡아 뺀 애의 머리는 울퉁불퉁하고 시뻘겠다. 그건 빈말로도 예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십수 년 후 몇몇 어른이 내게 고백했고 나는 그들에게만 약간의 자비를 베풀기로 결정했다.



2024.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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