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부모 중 어느 쪽과도 닮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편이지만, 그런 나로서도 별 수 없이 내가 그들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인정하게 되는 때가 있다. 처음 그 일은 나를 상처 주는 방식으로 일어났기에 인정하기조차 힘들었다. 내가 상처받거나 미워했던 부모의 모습이 나 자신에게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의 나를 미워하며 과거의 상처까지 들쑤셔야 했으니 이중으로 고통받는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지도 못한 면을 발견하게 됐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고등학생 시절 사진 같은 것이다. 학생증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엽서처럼 두께 있는 종이에 아버지의 증명사진과 낙엽 그림이 같이 인쇄되어 있었는데, 당시 유행인 물건인 듯했다. 부모님의 어릴 적 사진을 자주 찾아보는 편이었으므로 그 사진도 큭큭거리며 즐겁게 감상하다가 우연찮게 뒷면을 보게 되었다. 거기엔 아버지의 친필로 ‘청춘’ ‘바람’ ‘흐른다’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었다. 내 아버지가 문학소년이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당황할 정도로 놀랐었다. “이건… 너무 나 같은 짓인데…?” 아버지의 유년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아버지의 어릴 적을 물었고, 입이 떡 벌어질 얘기들을 몇 번이고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경우는 좀 더 내게 직접적이었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책을 곁에 두는 분이었기에 책을 좋아하는 내 유전자는 결국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오긴 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어머니를 닮았다고 느끼던 순간은 어머니가 공부하는 모습을 봤을 때였다. 어머니는 학구열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경제적인 활동에 훨씬 큰 에너지를 쏟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무언가를 계속 배웠고, 배우고 싶어 했다. 열정을 활활 태울만큼은 아니어도, 배우는 일을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듯했다. 나는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강의를 듣는다. 자격증 시험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의 어머니는 몇 시간이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꼼짝도 하지 않는데, 바로 옆방에서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다. 한 집안의 여자 둘이 데칼코마니처럼 몰두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면 역시 피는 못 속인다,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오늘은 저녁을 먹은 뒤 어머니와 산책을 했다. 해가 멋있게 지던데 미처 사진을 못 찍었다고 아쉬워하던 어머니는 해가 진 뒤 더욱 진하게 물든 하늘을 보며 당황할 정도로 놀랐다. 이 시간대에는 사진을 찍으러 나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다채롭게 물들었고, 어머니의 취미 생활이자 학업 과목인 사진 찍기를 하기에 맞춤이었다. 어머니가 사진 찍는 것을 가만히 보다가 프로 모드로는 안 찍어봤냐며, 몇 가지 기능을 알려주었다. 처음 보는 기능이었지만, 생일선물로 카메라를 받은 뒤에 짧게나마 온라인 강의를 들었던 터라 용어와 기능이 머릿속에 제대로 새겨지지 않았을 뿐이지 아주 낯선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처음 써보는 카메라 기능으로 이 하늘 저 하늘을 찍어보며 감탄했다. 아주 큰걸 배웠다고 좋아했다. 배운 걸 까먹기라도 할까 봐 반복했다. 사진 찍기 좋은 시간대를 알게 되었고, 다르게 찍는 법도 배웠다며 내일은 낮에도 나와서 찍어볼 거라고 말했다. 밥 먹고도 종종 나올 거라고 말했다. 그런 어머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틈날 때마다 셔터를 누르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나는 또 생각하고 말았다. “아아 아무래도 내 절반은 오 씨가 확실한 것 같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