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동생의 집들이가 있었다. 바로 전에 있었던 신혼부부 집들이에서 그들의 손을 덥석덥석 잡으며 부디 자신도 안락한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조금만 기운을 나눠달라고 절실하게 매달리던 모습이 선연한데, 다행히도 그때의 진심이 통했나 보았다. 고층 창밖으로 탁 트인 풍경. 저 너머로 보이는 산등성이가 자연의 일부를 마당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만의 만족감을 재연이라도 한 것처럼 내 마음을 술렁거리게 했다. 나는 공연히 뿌듯하고, 황홀한 마음이 되어 맛있는 음식을 내놓겠다고 부엌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는 녀석의 뒷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봤다. 대단하게 우러러봤다. 어른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웃으며 한 문장으로 퉁치기엔 대출부터 전세 계약까지의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고단하고 불안하고 무서운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한참 모자란 인간인 나로서는 엄두를 내는 것부터가 막막한 일이다. 진창 위에 스스로 길을 내어가며 나아가는 것이 어른인가. 그렇다면 어떤 도구를 어떻게 쓰면 좋은지 정도는 배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엎어져서 몸을 더럽혀가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배움이라고 여겨지는 건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 같다. 집 계약서나 대출 서류 작성하기 같은 건 왜 안 가르쳐주는 거야, 주식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거 다 학교에서 배우고 나오면 얼마나 좋아. 어른이란 결국 세상의 온갖 서류를 얼마나 능숙하게 작성하느냐가 척도가 되는 게 아닐까, 종국엔 그런 생각마저 들며 툴툴거림이 멈춰지지 않았다. 어른이 되기란 너무 어려운데 우리는 어른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어른형을 당연하게 요구받는다. 나는 그게 자주 버겁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가 애처럼 사탕만 쪽쪽 빨고 있겠다는 말이 아니구……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 그래, 알지 그런 거. 많지 그런 거. 그런 거에 주눅 들었던 우리의 얼굴들이 숨기를 그만두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애정을 담아 눈을 맞췄다.
여전히 신혼인 동생이 합류하며 자리가 완성됐다. 그 애가 들고 온 두루마리 휴지를 보자니 집들이 기분이 확 났다. 고리타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역시 집들이엔 휴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못 와도 얘는 꼭 와야 한다는 마음이다. 휴지가 집에 들어오면 신혼이라더라, 하는 친구의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의미가 더 가중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는 결혼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걔네 집에 갈 때면 휴지를 꼭 사 간다. 남의 집에 빈손으로 들어가길 꺼려 하는 나에게는 만만하면서도 참 유용한 아이템이다. 휴지를 건네며, 아직도 신혼이라니 굉장하네 같은 실없는 말을 덧붙이면 적절한 비속어와 함께 폭소가 돌아오곤 한다. 텀을 두고 만나는 상황에 그 공백을 단번에 지우는 데는 휴지 정도의 유머면 충분하다. 무엇보다 휴지는 쓸모가 많지 않나. 선물은 역시 당장 뜯어 쓸 수 있으면서 끝까지 다 쓸 수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내가 준 물건을 마구마구 쓰는 것을 보면 진정으로 보람을 느낀다. 그러기에 참으로 적합한 휴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앉으며 본격적인 집들이를 시작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나베 냄비를 둘러싸고 앉은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탁구공처럼 주고받으며 슬금슬금 성대를 풀었다. 우리는 모이면 대체로 먹는다. 그리고 떠든다. 나는 주로 웃는다. 평소엔 매가리 없이 피식거리고 말 것을 그 사이에서는 함께 공부하던 시절 배웠던 복식호흡까지 야무지게 써 가며 와하하하 웃는다. 얼마 안 가 내 목소리는 나가고, 나는 평소보다 두 톤쯤 낮아져서 걸걸하고, 퉁명스럽게, 무뚝뚝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갖게 되지만 말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은 왜 사과를 제대로 하지 않는 걸까?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그런 이야기를 첫 화제로 삼으며 제법 길어질, 하지만 우리에게만 짧게만 느껴질 조촐한 파티를 이어나갔다. 술이 물처럼 들어간다는 건 이때의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술 먹을 일이 드물기에 평소엔 거의 금주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해왔는데도 거리낌 없이 맥주가 넘어갔다. 배 불러서 싫다고 주종목도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생각해 보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게 참 많다. 맞아요, 탐탐 피자는 손바닥만 하고요. 손바닥보다 크다니까? 혼자 쌉가능이야. 아니, 진짜 크다고. 언니, 얘 나체로 샤워한대요 난잡하게. 뭐라고? 네, 저 난잡해요, 볼일 볼 때 팬티도 내려. 미쳤나봐! 뇌 CT를 찍었는데 뇌가 나온 거 있죠? 와, 얘 사람이었네? 사람이었댘ㅋㅋㅋㅋㅋ
빙수에 초를 켜고, 먹태도 구워 먹고, 타로점도 보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야무지게 썼다. 주말이었고, 어느새 막차가 하나 둘 끊어질 시간이 되어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나는 집으로 돌아갈 경로를 검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동생을 데리러 온 남편분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셔서 내심 안심하고 말았다. 뚜벅이인지라 이런 일이 왕왕 생기곤 하는데, 사실 나는 그때마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상대가 나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시켰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고 지낸지 오래인 친구들이 당연한 듯 우리 집으로 나를 태우러 올 때에도, 가는 길이라 괜찮다며 선뜻 타라는 타인의 제안에도 기쁘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 마음이 더 커서 달갑고 고마운 마음을 나도 모르게 뒤로 둘 때가 잦다. 하지만 거절할 만한 형편도 못 되는지라……. 그런 생각이 들며 나는 점점 작아진다. 빠르지만 안전하게, 동생 부부는 서울의 밤을 가르며 나를 데려다주었고, 나는 이 고마움을 어찌 갚으면 좋을지 빠르게 스쳐가는 가로등을 멍멍히 바라보며 고민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시트와 말소리처럼 나직하게 깔리는 음악.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뒷좌석으로 건네져오는 말과 웃음, 거기에 묻은 배려와 호의. 그 모든 마음들. 그에 응하는 가장 좋은 마음은 어떤 무게일까. 고맙다는 인사만 남기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다가 또 버릇처럼 더럭 초조해져서는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다짜고짜 소고기 세트를 카카오톡으로 선물했는데 취소당했다. 그래, 이건 답이 아닐 줄 알았어. 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집으로 가는 내내 운동화 뒤축이 직직 끌렸다. 금방이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지나는 길이니까 괜찮아요. 나도 그렇게 덤 얹듯 던지는 가벼운 말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고 싶었다. 호의를 갚아야 할 빚 같은 것이 아니라 호의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싶고, 혹 그에 대해 무언가를 보답한다 해도 너무 열렬하거나 전전긍긍하지 않았으면 했다.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제 무게와 역할을 잘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믿어야 했다. 그랬다면 오늘은 즐거움이란 단어만으로 완성되었겠지. 덤처럼 얹지 못한 마음에 아쉬워할 틈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