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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al Stem Dec 06. 2020

누구나 이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나를 이끌어갈 동력을 만드는 시간

 고등학교 시절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더 이상 성적에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수시전형을 선택했다. 더 이상 공부하는 것에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 마음에는 이미 성적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무조건 합격할 수 있는 대학으로 지원했다. 수능 최저 등급이 필요했지만 그 최저 등급은 현재 수준에서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수시 원서를 접수하고 나는 더 이상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 읽지도 않았던 책도 조금 읽어보았다. 야간 자율학습을 몰래 도망가 PC방에 가기도 했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대학교에 입학하면 뭔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서 걱정 없이 놀 수 있었다. 고등학생으로 갖고 있던 삶의 고민들과 문제들이 대학교 입학으로 인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될 줄 알았다. 이런 기대감을 갖고 합격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생활 초반에는 이런 기대를 충족하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동기와 선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학기 초가 지나고 중반이 되어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와 고민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더 많은 문제와 고민들이 생겼다. 더 이상 학생이라는 울타리는 없었고 나 스스로 선택할 것이 많았다. 그리고 모순적으로 나 혼자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에도 아직 많은 제약이 있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까지 별 의미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과 무엇을 위해서 대학에 왔는지 의문을 가졌다.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이 시간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인생에 최악의 바닥까지 내려가봤다는 것이 전부다. 물론 대학교 동기와 선배들, 후배들과 좋은 추억들이 있다. 방학 때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난 계속해서 인생의 바닥에 머물렀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계속 바닥을 찍는 생활이 이어졌다. 계속 의미 없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문득 목표로 여행을 떠났다. 그냥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그 당시 대학생, 청년들을 위해서 '내일로'라는 기차여행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나는 8월 어느 날 내일로 기차표를 끊고 목포로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땅끝마을. '끝'이라는 말에 뭔가 끌렸던 것 같다. 그곳에 가면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렇게 내 생에 처음 나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출발을 늦게 한 덕에 최종 목적지는 땅끝마을이었지만 도착하지 못했다. 목표에 너무 늦게 도착하여 목표에서 땅끝마을로 가는 막차가 이미 떠난 뒤였다. 그래서 나는 저녁 동안 목표를 한번 둘러보고 어딘지 기억이 나지 않는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땅끝마을이 아닌 비금도라는 작은 섬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하트해변을 보기 위해서는 산을 올라가야 한다는 택시 기사분의 유혹에 넘어가 아무런 준비 없이 등산을 했다. 별생각 없이 오른 산에서 나는 나름대로(?) 죽을 고비를 맞이하였다. 그 당시 상황은 이랬다. 한 여름에 가장 더울 시간 오후 1시, 그늘 하나 없는 바위산을 오르고 있었고 식사라곤 섬에 들어오는 배에서 먹은 육개장 사발면 하나가 다였다. 물론 전날에도 찜질방에서 먹은 라면이 전부였다. 지금이라면 혼밥도 잘 할 텐데 그 당시 나는 혼자 뭘 사 먹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다. 여하튼 이런 상황에 물은 사발면을 먹고 남은 물 500ml 1/3 정도가 있었다. 머릿속으로 물을 아껴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힘들고 고민이 있을 때 답답할 때 피던 담배도 안전하게 내려가면 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름대로 생사를 걸고 등산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힘든 산은 아니었는데 그냥 상황이 그랬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름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느낌도 들었다. 산을 내려가 하트해변을 봤을 때는 잘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뿌듯한 시간을 보내고 비금도의 한 해변에 혼자 앉았다. 그 당시 여행객은 나 혼자인듯했다. 해변 전체를 대여한 듯 혼자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해변에 홀로 앉아 이번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특별한 계획 없이 땅끝마을만 생각하고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리고 하나 있던 목표인 땅끝마을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오늘 비금도라는 곳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 오랜만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구나.


 근데 왜 지금까지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고 힘들었을까? 그건 내가 결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를 선택하는 것, 무엇인가 하기로 선택한 것이 사실은 타인의 기준에서 선택한 것이었다. 내 필요에 의해서 대학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기대 때문에,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대학교를 입학한 과정도 그렇다. 그냥 더 이상 성적을 올릴 자신이 없었기에 포기하고 수시전형으로 대학교에 입학했다. 왜 가야하는지 고민없이 가야 하긴 하니까 편한 방법으로 가자는 생각이였다. 그 부작용을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떠난 여행을 통해서 나는 내 삶에 뒤돌아 봤다. 그리고 혼자 떠났다는 것 자체가 내 삶에 힘이 되었다. 이 여행을 기점으로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 이후 입대를 했고 동료들과 군 간부에게 나름 인정을 받고 전역했다. 전역 후 내 적성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그 결과를 통해 전과도 신청했다. 그리고 전과한 학과에서 높은 학점을 받았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대학 생활이 재미있고 의미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니 홀로 여행을 떠난 그날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내 삶이 새롭게 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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