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감사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바꿔보기로 다짐했던 지난날의 나의 '선택'에 감사한다. 그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 내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다. 이런 감사함을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것은 나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일이다. 나는 20년이 넘도록 다른 사람들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못생기고, 끈기가 부족하고, 하등 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나 자신에게 감사한 적 없었다.
감사하는 마음은 참 따듯한 마음이다. 나는 종종 이런 마음을 타인에게서 느꼈다. 나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서. 학창 시절에는 종종 선생님들께 이런 마음을 느끼곤 했다. 내가 장학금을 받고 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선생님, 수학 점수를 올릴 수 있도록 자신의 쉬는 시간을 반납해서 나를 가르쳐주었던 선생님, 고민이 있을 때 카페에서 맛있는 음료를 사주며 위로해 주었던 선생님. 어려운 상황에 놓인 위태로운 어린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멘토가 되어주려 했던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참 어른이었다. 어른이 된 후 이런 일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감하게 된다.
가장 가까이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나와 오빠를 키우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했다. 나는 그 우여곡절을 곁에서 지켜보며 엄마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한 번도 제대로 그것에 대해 솔직하게 고마운 표현을 한 적 없었지만, 그런 엄마 곁에서 어른이 될 수 있어서 중요한 시기에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감사함을 쉽게 느낄 수 없었다. 사회는 대부분 기브 앤 테이크였다. 선생님이나 엄마가 주었던 형태의 선의를 찾기 힘들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세상이 마치 전쟁 같다는 것이다. 각자 생존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 같았다.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거나 눈속임 해야 했다. 내가 바라는 형태의 서로 연민하고 보듬어주는 마음 보다 사람들은 서로 '더' 잘 살기 위해 싸웠다. 이런 상황이 기존에 내가 가진 열등감을 자극시켰고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무능함, 못생김, 가난함 때문에 숱한 날 눈물을 흘리며 잠들었다.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능력'이 곧 '돈'인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연구했다. 나의 쓸모와 행복을 찾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죽어라 일을 했고, 당시 목표했던 경제적인 부를 달성하고 난 이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정말 망연자실했다. 그때가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다. 당혹스럽고, 공허하고, 실망스럽고,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했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꿈을 위해 존재하는 자유를 잃은 전쟁터 속 병사였다. 울부짖었다.
"이런 거지 같은 세상!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은 왜 이 따위로 돌려주는 거야."
"왜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위해서 제대로 된 응원을 해주지 않는 거냐고."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나의 상황을 바꿔보겠다고.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으니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나 자신을 위로하겠다고. 이때 다짐한 그 마음이 대견스럽다.
그때부터 혼자서 자숙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사회적 노동에 손을 놓았다.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아꼈다. 그리고 온전히 나를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심리학, 인문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의 책과 영상들을 모조리 보았다. 이때 보고 듣고 배우고 사유한 모든 것들이 나를 점점 변화시켰고 비로소 어떤 생각을 정립한 뒤 나의 마음은 점점 괜찮아졌다. 그때의 선택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비난하고 하등 하다고 여겼던 생각을 정리하고, 긍정과 확신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무한한 존재라고 믿는다.
며칠 전 읽었던 책에서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했던 선생님, 그리고 엄마는 이미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요즘 꿈이 생겼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내가 가지게 된 많은 깨달음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경험했던 따듯한 기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