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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21. 2020

17. 둘이서 라면 하나 - 해물라면

해물라면

39년간 살면서 잊지 못할 오징어 튀김을 두 번 먹은 적이 있다. 한번은 세비야에 있는 어느 로컬 식당에서였는데 민박 주인이 꼭 가보라고 하여 방문한 곳이다. 한국에서는 오징어를 기다랗게 잘라 튀겨주는데 외국에서는 동그랗게 말아 튀긴다. 보통 외국에서 먹는 오징어는 깔리마리(calamary)라 하는데 오징어(squid)보다 작고 덜 질기다. 동글동글한 오징어 튀김을 하나 집어 먹었는데 튀김이 바삭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오징어 튀김이라니. 그런데 희한하게 정말 맛있어서 포장을 따로 하여 숙소로 가지고 간 기억이 있다.


 또 한 번은 다낭에 있는 안방비치에서 먹었던 오징어 튀김이다. 여러 식당에서 해변에 파라솔을 펼쳐 놓았기에 파라솔에 앉으려면 뭔가 먹을 걸 시켜야 했다. 우리는 간단하게 마실 맥주와 오징어 튀김을 주문했고 관광지라 음식 맛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바삭바삭한 오징어 튀김은 어디서 온 거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 앉아 뜨거운 오징어 튀김을 먹으며 놀라워했던 적이 있다.


 갑자기 오징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팔도에서 만든 해물라면 때문이다. 라면에 든 해산물을 살펴보니 오징어가 제일 많이 들어 있다. 표지에도 오징어가 예쁜 척을 하며 웃고 있는데 입모양이 딱 셀카 찍는 표정이다. 그 옆엔 새우, 홍합, 미더덕(도토리 같이 생긴 아이)이 함께 미소 짓고 있다. 스프에 해물이 총 9.03% 들어 있는데 그중 오징어 3.77%, 새우 2.11%, 홍합 0.11%, 미더덕 0.02%이다. 오징어가 많이 들어 있으니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난 오징어를 좋아하니까.


 라면을 끓인다. 보글보글. 해물 향이 솔솔 난다. 다 익었다. 국물을 한 입 떠먹는다. 오. 해물맛이 나는 걸. 라면을 한 젓가락 호로록 먹어본다. 오. 해물 맛이 난다. 라면 표지에 ‘해물이 라면 맛을 살렸다!’라고 적어놨는데 그 말에 동의한다. 면발에 해물 맛이 잘 베어 먹을 때마다 진짜 해물을 넣은 라면을 먹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오징어는 어디에 있지? 남편에게 오징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몇 개 찾아 준다. “이게 오징어 인거 같은데?” “정말? 너무 작아서 오징어인줄 몰랐어. 오징어가 국물에 다 녹았나봐.” 비록 직접 오징어 씹는 맛은 느낄 수 없지만 해산물 맛은 라면에 가득하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바닐라 빈 같은 거. 바닐라 빈은 바닐라라고 불리는 덩굴식물의 열매이다. 바닐라콩이 들어있는 바닐라 빈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생긴 꼬투리이다. 바닐라의 주 생산지는 마다가스카르와 인도네시아인데 두 나라에서 전 세계 바닐라의 90%가 생산된다고 한다.


 바닐라 꼬투리는 진한 꽃향기와 달콤한 풍미를 가지고 있어 요리에 사용하면 엄청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이나 바닐라향 과자에는 인공 바닐라향이 첨가됐다고 보면 된다. 이유는 바닐라 꼬투리가 샤프란 다음으로 비싼 향신료이기 때문이다. 쇼핑몰을 검색해 보니 현재 16cm 길이의 바닐라 꼬투리 8개(25g)가 25,000원에 팔리고 있다. 비싸긴 하다. 그러나 진짜 바닐라빈이 들어간 음료나 케이크를 맛본다면 눈이 오징어만큼 커질지도.


 검은 바닐라 꼬투리를 세로로 길게 자르면 안에 바닐라콩이 있다. 이걸 칼로 살살 긁어내면 찐득찐득한 검은 콩이 나온다. 물과 설탕을 냄비에 반반 넣어 끓인 후 식힌다. 유리병에 시럽을 담고 긁어낸 바닐라콩과 바닐라 줄기 몇 개를 함께 넣으면 바닐라 시럽이 된다. 라떼를 만들 때 바닐라 시럽을 한 스푼 넣어 보시라. 입안이 온통 바닐라 향으로 가득 찬다. 눈에 보이는 건 바닐라 콩에서 나온 까만 점들뿐이지만 그 향기로움은 막강하다. 스프에 녹은 오징어분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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