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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15. 2020

16. 둘이서 라면 하나 - 수타면

수타면

어렸을 적 아빠는 나와 동생을 위해 나무로 2층 침대를 만들어 주었다. 직접 톱으로 나무를 길이에 맞게 자르고 망치로 못을 쿵쿵 박아 며칠에 걸쳐 만든 튼튼한 침대였다. 친구들이 오면 장난을 치는 장소나 아지트로 변하기도 했던 2층 침대. 아빠는 손재주가 많아 무엇이든 뚝딱 만들었고 고장난 물건도 쉽게 고쳤는데 목수였던 할아버지의 재주를 물려받아 그런 것 같다. 한없이 투박한 침대를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우리 아빠가 만든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았다. 손으로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한다는 건 그에 따르는 노동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고단하다는 걸 알기에 생산자보다는 소비자가 되는 편을 택할 때가 많다.


 삼양라면에서 나온 수타면을 보니 반가움과 의혹이 동시에 든다. 요즘은 손으로 반죽한 수타 짜장면도 찾기 힘든 세상인데 수타 라면이라니.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라면 면발이 얼마나 쫄깃쫄깃할 수 있을까?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라면을 넣고 끓인다. 표지 좌측 상단에 ‘화끈하게 때렸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화끈하게 때려 쫄깃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화끈하게 맵다는 뜻일까? 뒷면에 얼큰한 국물맛이 특징이라고 적힌 걸 보니 매운가보다. 보글보글 라면이 끓는다. 수타면이니 특별히 더 공을 들여 면발을 유심히 확인한 후 알 덴테(면이 살짝 덜 익은 상태)상태가 되자마자 불을 끈다.


 “남편 라면 먹자. 이거 수타면이래.”

“오호. 내가 한 번 먹어볼게.”


남편이 먼저 라면을 호로록 한 입 먹는다.


“맛이 어때?”

“이거 수타면이라고? 흠.”


남편의 반응에 나도 한 입 먹어본다.


“이게 수타면이라고?”

“그러게.”


아니 화끈하게 때렸다면서요? 면이 전혀 쫄깃하지 않은걸요. 다른 라면과 무슨 차이가 있나요? 수타면답게 면발이라도 좀 굵던가! 국물을 한 입 떠먹는다. 얼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맵지도 않다. 그냥 라면 국물 맛이다. 왠지 오!라면이 생각난다. 너희 둘이 친구니?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어울린다는 뜻이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결혼도 하고(나와 남편처럼. 그 때는 성향이 비슷한 줄 알았답니다) 친구 관계를 맺기도 한다. 하지만 단짝 친구들을 떠올려 보면 아무래도 난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는 헤르베르트와 니 와얀 락스미(아만다)라는 재미있는 커플이 등장한다. 둘 다 멍청하고 지능이 낮은 인물로 묘사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국적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다.

 락스미는 헤르베르트를 보고 자신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인데 자기만큼 둔한 사람을 지금까지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둘은 결혼에 성공하고 헤르베르트는 몇 주 동안 아내 이름을 외워 보려 애쓰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남자가 아내에게 말한다.


“여보. 난 아무리 해도 당신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이름을 아만다라고 하면 안 될까?” 

“아주 좋은걸! 아만다……아주 예쁜 이름이야. 하지만 왜 하필 아만다야?” 

“나도 몰라. 당신에게 더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락스미는 별다른 생각이 없기에 그날부터 그녀의 이름은 아만다가 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부부인지.


 수타면은 다른 라면과 차별화 하려고 나름 노력을 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쫄깃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은 대부분의 라면도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 부각되지 않는다. 수타면이라는 이름에 맞게 면발에 좀 더 신경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면 세계에서 라면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꾸는 것도 이상하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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