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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14. 2020

15. 둘이서 라면 하나 - 오라면

오라면

남편이 말한다.


“왜 엄마들은 라면을 끓일 때 물을 정량보다 많이 넣는 걸까? 한강에 라면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물을 넣어 끓이면 무슨 맛으로 먹냐고. 어렸을 때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엄마도 물을 잔뜩 넣어 끓여 주더라고. 아니 라면에 물 좀 더 탄다고 라면이 건강식품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거면 차라리 라면을 주질 말던가. 이래서 라면은 아빠가 끓여야 돼. 아빠는 짜건 말건 몸에 좋건 나쁘건 딱 정량대로 넣어 끓이거든.”


 내가 대답한다.


“야. 너는 어렸을 때 라면을 먹기라도 했지. 우리 엄만 몸에 나쁘다고 끓여주지도 않았거든.”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오! 라면의 맛 때문이다.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우리는 오! 라면을 먹기로 결정하고 물을 끓인다. 라면 이름에 감탄사가 붙을 정도로 맛있는 라면일까? 그렇게 추측하기엔 가격이 너무 싸다.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둘 다 처음 맛보는 라면이라 조금 설레기도 한다. 라면이 다 끓었다. 국물은 딱 라면색이며 냄새도 딱 라면 냄새다.


 호로록 라면을 한 입 먹자마자 우린 동시에 외친다.

“이건 라면 맛인데.”

그렇다. 오! 라면은 오로지 라면 맛이 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라면스프 맛. 국물을 한 입 떠먹어 본다. 음~ 라면스프 맛이다. 다른 맛을 느껴보려 노력해도 소용없다. 어렸을 적 엄마들이 물을 잔뜩 넣고 끓이면 신라면이든 진라면이든 각각의 라면이 가졌던 고유한 특징은 모두 사라지고 순수하게 라면 맛만 느껴지던 것과 같은 맛이다.


 오!라면은 2019년 오뚜기에서 출시한 저가형 라면이다. 따라서 분말스프 안에 건더기가 있는 일체형인데 건더기라고 해봤자 건미역과 계란 후레이크 조금이다. 표지 좌측에 그려진 라면 위에는 달걀, 표고버섯, 대파, 양파, 양송이 버섯, 쑥갓이 올려져 있다. 라면 위에 쑥갓이 올려진 건 처음 본다. 쑥갓의 의미는 무엇일까? 표지 바탕은 빨간색이며 오!라면 글자가 거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다(강조할 만한 특징이 없기 때문이겠지). 이름을 샛노란 사각형 바탕에 붉은 글자로 적어놓아 눈에 확 띈다. 제목 아래에 “라면의 본질을 추구하다”라고 적어놓았는데 맛을 보면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태초의 라면(스프) 맛이라고나 할까. 면은 쫄깃하고 국물은 적당히 매콤하다. 대부분의 라면이 그러하듯.


 본질(The essence)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사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모습을 본질이라 정의하였다. 플라톤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였는데 그 중 스피노자의 말이 인상 깊다. 그는 <에티카>라는 책 3부에서 “욕망을 어떤 정서에 따라 어떤 것을 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여기는 한, 욕망은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라고 정의하였다. 욕망 없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욕망의 크기가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거나 클 뿐. 우리는 먹고 싶은 욕망을 느끼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고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기도 한다. 욕망은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욕망이란 게 없다면 내 존재의 생생함은 희미해 질 것 같다.


 나는 책읽기에 대한 욕망이 강한 편이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 서점에 새로 나온 책을 다 살펴보고 싶다는 욕망이 끝없이 솟아난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모르는 내용이 많을수록, 내가 무지할수록 지적 즐거움은 더욱 커진다. 책을 읽으면 내 존재가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남편은 풍경이나 사물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자유자재로 잘 그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남이 그린 그림을 감상한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각종 펜과 물감 스케치북으로 확대되면 곤란하겠지만 다행히 도구에 관한 욕망은 적은 편이다(미술 용품이 너무 비싸 욕망을 자제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론은 인간의 본질은 욕망이며 라면의 본질은 오!라면 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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