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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와 모과 Jun 09. 2020

14. 둘이서 라면 하나 - 틈새라면

틈새라면

 스코빌 척도라고 들어 보셨는지? 미국의 약사 윌버 스코빌이 만든 척도로 고추나 후추 같은 고추과 식물의 매운맛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스코빌 척도에서는 SHU라는 단위를 사용하는데 전혀 안 매운 건 0이며 매워질수록 조금씩 수치가 높아진다. 2012년 팔도중앙연구소와 삼양식품에서 매운 라면의 스코빌 지수를 조사하였다. 6위는 신라면(1320). 5위는 진짜진짜 맵다. 맵다!(2724). 이런 제목의 라면도 있다는 게 신기하네. 4위는 열라면(2995). 3위는 남자라면(3019). 2위는 불닭볶음면(4404). 1위는 짐작하셨듯이 틈새라면 (8557)이다. 

 지수를 살펴보면 틈새라면이 압도적인 1위(현재는 더 매운 라면들이 나와 3~4위로 밀려났다)이다. 매운 맛이 신라면의 7배나 된다. 신라면도 매워 못 먹는 나에게 틈새라면은 얼마나 매울지 상상도 안 간다. 틈새라면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매운 라면인 줄은 몰랐다. 대체 이런 걸 누가 먹는다고? 라면 봉지 뒷면을 봤더니 ‘틈새라면은 1981년 김복현 사장이 명동 작은 골목집에서 강렬한 매운맛의 빨계떡으로 시작한 라면 전문점’ 이라고 적혀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전국에 체인점이 있는 라면 회사이다. 아하 우리 동네에서도 길을 가다 간판을 보긴 했다. 그러니까 원래 틈새라면 라면 전문점에서 빨계떡을 팔고 있었는데 어느 날 팔도식품과 손을 잡고 라면을 만든 것이다. 틈새라면 체인점에서 파는 라면은 시중에서 파는 것과는 조금 다른 라면이라고 한다.


 그럼 빨계떡은 또 뭐지? 이건 초창기에 김복현 사장이 개발한 라면으로 고춧가루를 잔뜩 넣어 빨간 국물에 계란과 떡을 넣은 라면이라는 뜻이다. 라면봉지 우측 상단에 보면 의인화된 빨간 청양 고추 한 명이 날개 달린 옷을 입고 삼지창을 든 채 무언가를 무찌르러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창끝에는 고추, 달걀, 떡이 하나씩 꽂혀 있어 빨계떡의 뜻이 뭔지 추측할 수 있다. 그럼 라면에 달걀과 떡도 들어 있을까? 당연히 없다. 조리법에 보면 기호에 따라 넣어먹으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표지에 빨계떡이라는 단어는 적지 말았어야지!


 라면 표지 왼쪽 상단에는 ‘매운맛의 자부심 맵부심’ 이라 적혀있다. 이런 식으로 단어 만드는 건 좀... 그릇에 담긴 라면 국물은 무시무시한 시뻘건 색으로 고춧가루도 소복이 뿌려져 있다. 봉지 바탕 자체도 빨간 색이다. 라면 면발 위에는 청량고추,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파, 배추, 달걀이 소담하게 올려져 있다. 어라? 그런데 아무리 봐도 떡은 안보이네. 빨계떡이라면서요! 글과 그림 일치에 신경 좀 써주시죠! 봉지 오른쪽 하단에는 아까 뭔가를 무찌르러 가던 빨간 청양 고추(그림에서는 머리만 보인다)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숏다리다) 틈새라면을 먹고 있다. 고추는 땀을 뻘뻘 흘리고 엉엉 울면서 라면을 먹는 중이다. 네가 무찌르려고 했던 것이 극한의 매운 맛이었구나. 너도 틈새 라면을 먹으며 우는 판에 내 어찌 이걸 먹을 수 있겠니.


 이제 라면을 끓일 시간. 남편도 나도 매운 걸 못 먹기에 장시간의 토론을 거쳐 둘이서 라면 반 개를 나눠먹기로 한다. 냉장고에는 계란도 떡도 없다. 까딱하면 한 입 먹고 입안이 마비될 지도 모른다. 혹시 모를 위급 상황에 대비하여 집에서 만든 통밀 빵 몇 조각도 오븐에 굽는다.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떨면서 틈새라면을 먹어야만 할까? 먹어야만 한다고 남편이 말한다.


 라면을 끓인다. 끓는 냄새부터 맵다. 보글보글 라면이 다 끓었다. 진한 빨간 국물을 보니 정말 먹고 싶지 않다. 호로록 한 입 먹는다. 얼큰하다고 표현하고 싶지만 그냥 맵다. 입 안이 아리다. 한 입으로 충분하다. 남은 라면은 너그럽게 남편에게 양보한다. 너 많이 먹어. 남편은 비장한 얼굴로 라면을 먹는다. 호로록. 별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먹는다. 어라? 잘 먹네. 조용히 라면을 다 먹은 남편이 500ml 컵에 물을 가득 따른 후 한 번에 마시더니 말한다.


“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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